
나의 아침 기상 알람은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다. 부엌으로 가서 반찬을 입에 넣으면, 음… 역시. 솔직히 엄마 음식은 내 입맛에 잘 안 맞다. 어딘가 묘하게 부족하다. 어릴 때는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곧이곧대로 말했다. 조금 크고 나서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냥 먹는다. 가끔 감정 없이 맛있다고도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정말?” 하며 좋아한다.
학교에서 조례를 마치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아현아! 우리, 집 가는 길에 있던 베이킹 학원 기억나?”
“알지. 거기는 왜?”
“베이킹에 관심이 생겨서 다녀보려고. 너도 같이 다닐래?”
맛있는 빵을 내가 직접 만든다니, 솔깃했다. 집에 가서 엄마를 보자마자 허락을 구했다.
“엄마! 나 친구랑 베이킹 학원 다니면 안 돼? 재밌을 것 같은데.”
“갑자기? 요리도 잘 안 하면서 다닐 수 있겠어?”
맞다. 나는 달걀프라이, 라면, 볶음밥 외에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배고프면 그냥 참거나 언니에게 부탁한다.
“재료 사서 집에서 해 봐. 요즘 검색하면 잘 나오잖아.”
그렇게 바로 베이킹 학원의 소망을 접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마지막 방학을 맞았다. 방학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번뜩 요리가 떠올랐다. 평생 요리하지 않으며 살 수는 없는 법. 언젠가 배워야 할 요리라면 방학 기간에 연습해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학에는 엄마가 아침에 만들어둔 반찬을 먹고, 다 떨어지면 편의점에서 즉석식품을 사 먹었는데 그것도 금방 질렸다.
집에서 틈틈이 요리해보기로 하고 처음으로 만든 것은 쿠키다. 인터넷에서 제일 쉬워 보이는 요리법을 찾아 따라 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재료들을 섞어 구우면 쿠키가 되는 것도 신기하고, 오븐 틈새로 새어 나오는 냄새도 좋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쿠키를 구웠다. 쿠키를 실컷 만든 후에는 빵으로 종목을 바꿨다. 반죽기 없이 밀가루를 손으로 치대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빵이 부풀고 구워지는 과정이 신기했다.
다음으로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인터넷 자료와, 엄마의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법을 참고해 미역국에 도전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면 식은땀이 났고, 내가 원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분명 하라는 대로 했는데 맛이 2% 부족했다.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아무거나 넣었다가 또 다른 이상한 맛이 창조됐다.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앞을 불안한 사람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재료를 더 넣거나 졸이며 씨름한 끝에 겨우 미역국이 완성됐다. 엄마에게 바로 맛 평가를 부탁했다. 솔직히 내가 맛봤을 때는 맹맹하고 미역의 비린 맛이 강했다. 그래도 엄마 입에서는 맛있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음! 맛있네. 어떻게 끓인 거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거창하거나 맛 좋은 음식은 아니어도 열심히 만들었기에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까지 보니 다른 음식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과정이 험난해도 말이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사랑하는 가족이 먹을 음식을 늘 정성스레 요리한다. 티 내지는 않지만 새로운 음식을 선보일 때면 가족들의 좋은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가끔씩 건성으로 하는 “맛있다”라는 말에 엄마가 왜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엄마가 식사를 마친 후에도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왜 기다렸는지.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오랜 시간 주방에 서서 고생한 엄마의 에너지였던 것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툴툴대던 내가 야속하고 미웠다.
따뜻한 집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에게 말해야겠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모두 담아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