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갛게 충혈된 눈을 인공눈물로 진정시키며 학원에 가던 길, 내 눈과 코를 괴롭히던 꽃들이 나를 반겼다. 한 걸음에 자목련, 두 걸음에 개나리, 세 걸음에 벚꽃, 네 걸음에 이름 모를 꽃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알레르기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후로 그 길을 지날 때면 맑은 햇살 아래 맺힌 빨강, 노랑, 하양, 색색의 꽃망울과 수줍게 돋은 연둣빛 새순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넋 놓고 보다가 빨리 오라는, 학원의 재촉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중간고사만 끝나면 여한 없이 꽃구경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중간고사와 함께 나의 봄날은 갔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가셨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꽃이나 봐도 될까 불안해 용기가 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어느새 처방받은 알레르기 약도 다 먹고, 자다가 코막힘으로 중간에 일어나는 일도 줄었다. 내가 가는 길을 꽃길로 만들어준 꽃잔디와 봄꽃들은 초록 잎만 남기고 떠났다. 봄이 그렇게 스쳐갔다.
봄날처럼 아름다운 행복이 종종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런데 행복하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언제 불행해질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걱정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내게 다가온 행복들을 떠나보내지는 않았을까.
빠르게 스쳐가는 봄. 그 봄을 붙잡는 건 내게 달렸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행복을 만끽하고 감사하자. 내 마음이 사시사철 꽃 피는 봄이 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