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이 반짝일 곳 下

“하암~ 조금만 더 자면 안 되나요?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밝음아. 너 계속 이러다가 정말 별빛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니까!”
“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해요? 고작 몇 분 더 잔다고 설마 빛을 잃어버리기야 하겠어요?”
밝음이가 도시로 온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해가 지고 별들이 나가야 할 차례인데 하품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밝음이 때문에 영롱이는 저녁마다 고역입니다.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는 밝음이를 몇 번이나 어르고 달래서 깨우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입니다.
밝음이는 영롱이의 성화에 못 이겨 슬그머니 일어나 아파트 위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일하다 얼른 들어와 잠들어 버립니다. 매일 반복되는 밝음이의 행동에 영롱이는 지칠 지경이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빛을 내려 하지 않는 별이 어떻게 되는지 영롱이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귀여운 동생이 별빛을 잃고 추락하는 별똥별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영롱이가 힘에 부치는 날은 도시의 다른 큰별들까지 합세해 밝음이를 억지로라도 일으켰습니다. 인상을 찡그리며 나가는 밝음이의 뒷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왔습니다. 밝음이는 그런 영롱이를 힐끔 곁눈질하고는 아파트 위로 쏜살같이 날아갔습니다.
아직 어린 자신을 하루 정도 쉬게 해줄 만도 한데 인정 없는 언니 오빠 들은 매일 밤 귀찮게 깨워대고 잔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정말이지 짜증스럽습니다. 차라리 도시에 별이 많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밝음이는 허공에 엎드려 땅을 내려다봤습니다. 틀에서 찍어낸 듯 하나같이 각지고 네모난 아파트는 단조롭고 지루했습니다. 눈꺼풀이 처지는가 싶더니 정신이 몽롱해지며 고개가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싶지만 요즘 들어 왜 이리 잠이 늘었는지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밝음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어? 처음 보는 애들인데, 누구지?”
밝음이 눈에 남매로 보이는 꼬마 아이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베란다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빠, 도시는 밤에도 밝네?”
“응. 불빛이 워낙 많으니까.”
“난 밤에는 어두워야 좋은데···. 시골에서는 풀밭 위에 돗자리 깔아놓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참 많잖아. 하지만 여기선 그럴 수가 없어. 별도 없고. 여기보다 시골이 좋아.”
밝음이는 도시를 싫어하는 그 여자아이가 마치 자신과 똑같은 처지 같아 마음이 갔습니다. 남자아이는 동생을 위해 별을 찾으려고 하늘을 둘러보았지만 점만 한 작은 빛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진 밝음이의 빛이 남매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남매는 별을 찾지 못한 채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난 여기 있는데, 왜 나를 찾지 못하는 거야?’
밝음이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시렸습니다. 남매가 발견해 주었으면 아주 기뻤을 텐데···.
화려한 도시의 빛이 원망스럽고, 별빛을 가리는 구름에 화가 납니다. 별을 찾는 아이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만약 나 대신 영롱이 언니가 여기 있었다면 어땠을까?’
영롱이의 빛은 땅에서 바라보면 밝기가 약하기는 해도 남매가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흐리지는 않습니다. 영롱이의 빛은 별을 보기 열악한 도시에서도 반짝거리며 빛났습니다.
밝음이는 영롱이가 투정을 부리던 자신에게 맨 처음 해준 말이 생각납니다.
‘별로 태어난 이상 어디에 있건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영 별빛을 잃어버리고, 하늘에 떠 있을 수 없을 거야.’
밝음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새벽길, 밝음이는 다짐했습니다. 두 남매에게 보일 정도로 아주 밝은 별이 되겠다고요.

“밝음아,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네!”
씩씩하게 대답하는 밝음이의 모습을 본 영롱이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밝음이의 별빛은 아직 약하긴 하지만 분명 어제보다 환해져 있습니다. 다른 도시 별들도 한시름 덜었다는 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밝음이는 어제 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파트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남매는 부모님 곁에서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자 밝음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베란다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빠, 우리 내일 집에 가는 거야?”
“응. 큰집에서 설날 재밌게 놀았으니까 개학 준비하러 돌아가야지.”
“칫. 학교 가기 싫다! 학교 갈 바엔 여기가 좋아.”
“언제는 별 없는 도시가 싫다더니?”
남자아이가 꿀밤 먹이는 시늉을 하자 까르르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맑게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밝음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밝음이는 영롱이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습니다.
“언니, 전 아이들에게 별빛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영롱이는 밝음이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꼭 안아주었습니다.
“영롱이 언니, 언니가 너무 부러워요. 언니 같은 빛을 가지고 싶어요.”
“밝음아, 언니도 처음 도시에 왔을 땐 너와 똑같았어. 도시가 싫고 일은 너무 지루해서 점점 빛을 잃어갔거든.”
밝음이는 놀란 눈으로 영롱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언니의 아름다운 별빛이 자신처럼 미약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밝죠?”
“나도 너처럼 별을 찾는 사람을 만났으니까. 도시 사람들의 마음이 삭막하다고들 하지만 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아직 있거든. …걱정 마, 밝음아. 그 아이들은 다음에 또 놀러올 거야. 그때까지 밝은 빛을 내도록 노력하자.”
밝음이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영롱이 손길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작년보다 조금 더 자라 도시를 방문한 남매가 하늘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금세 발견했습니다.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해 밝음이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밝음이 곁에는 오늘 처음 도시로 배정된 동생이 있습니다. 밝음이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아기별은 아주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밝음이는 새로 온 아기별의 작은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었습니다.
캄캄한 어둠만 늘어진 밤은 얼마나 무서울까요? 그 어둠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따스한 별빛 한 조각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박혀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밝음이는 도시의 별이라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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