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추억. 시간은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학교를 마치면 가끔씩 버스를 타고 엄마가 일하는 마트로 갔다. 하루는 내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새로 지은 건물에 생긴 마트라 한번 구경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저녁에나 집에 오셔서 엄마 몰래 갔다 오기에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았다. 나는 마트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으려고 그동안 아껴둔 저금통까지 열었다. 콩닥콩닥 가슴이 요동쳤다.
친구를 따라 버스를 타고 마트에 도착했다. 엄마와 있으면 못 먹을 것들을 실컷 사 먹고 신나게 놀았다. 마지막으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다가 시간이 되어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친구가 마트에 또 가자고 했다. 나는 돈을 챙겨서 친구를 따라갔다. 처음보다 떨리지 않았다. 하하 호호 재미나게 놀다 보니 엄마가 집에 올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과자를 먹던 손을 멈추고 친구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난 우리 엄마 퇴근할 때까지 더 있다가 갈 건데. 너 혼자 갈 수 있지?”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혼자서는 못 간다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는 꿈쩍하지 않았다.
“△번 버스 타고 가면 돼. 네가 알아서 좀 가봐.”
그때부터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친구가 말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집에 돌아가는 버스 번호가 보이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겁에 질려서인지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 거인들 같았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얼른 올라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밖은 컴컴해졌는데 우리 집이 코빼기도 안 보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아파트는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버스를 반대로 탔다는 것이다.
“우앙!”
서러웠다. 마트가 뭐길래, 엄마에게 말도 않고 멋대로 나와서 이 고생을 한단 말인가. 그때 내 심정을 네 글자로 표현한다면 정말 후.회.막.심.이었다.
기사 아저씨는 나를 달래며 종점까지 간 후에 집에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나는 좌석에 다시 앉았다. 얼마나 춥던지, 발을 의자 위에 올려 웅크린 채로 눈물 콧물이 범벅 되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기사 아저씨가 집 근처에서 나를 내려주셨다. 머지않아 닥칠 엄마의 회초리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헉헉 숨을 내쉬며 뛰어갔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자 귀에 익숙한 자동차 경적이 뒤에서 울렸다. 돌아선 순간 그날 흘린 눈물의 배가 쏟아졌다.
“엄마! 아빠! 흐엉!”
엄마는 내 몰골을 보고는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다. 난 그동안의 이야기를 이실직고하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얘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등이라도 한 대 맞을 줄 알았는데, 엄마는 이 말만 하고 나를 차에 태우셨다.
그날 엄마 아빠는 나를 식당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시고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만 하셨다. 물론 엄마 아빠가 말하지 않았어도 다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추억은 어린 시절 코미디로 남았지만 아찔한 기억이기도 하다. 내가 그때 정말 길을 잃었더라면, 그래서 잘못됐더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도 나는 부모님께 내 멋대로 굴 때가 있다. 이제 철 좀 들었으니 부모님의 심정도 헤아려야겠다. 겉으로는 화내시고 또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위로해 주셔도, 속으로는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