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다! 소민아, 우리 낙타 가까이 가보자. 언니, 낙타 만져봐도 돼요?”
“물론이지.”
소원과 소민은 낙타 무리에게 다가갔다.
“어, 쌍둥이네?”
“네? 언니, 저희 부르셨어요?”
“아니?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얘들아, 잠깐 낙타 구경하고 있어. 인원 체크 좀 하고 올게!”
“…이상하다, 분명 쌍둥이라고 했는데.”
“설마 저 쌍둥이들한테 네 말이 들린 건 아니겠지?”
낯선 목소리에 소민과 소원은 옆을 봤다. 그곳에는 낙타뿐이었다.
“응? 누가 말한 거지?”
“뭐야? 정말 우리 말이 들려?”
소원과 소민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떴다. 낙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 낙타가 말했다.
“으… 어… 아… 낙타가….”
소원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소민도 돌처럼 굳었다.
“어이, 너무 놀라지 마. 우리도 놀랐으니까. 간혹 우리 목소리를 듣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더라고.”
속눈썹이 유독 긴 낙타가 소원과 소민을 진정시켰다.
“너희 이름이 뭐니?”
이번에는 진한 갈색 털의 낙타가 물었다. 소민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소민이고, 여기는 소원이에요.”
“우리는 여기서 30년을 살았단다. 사람과 대화한 지 오래됐는데 진짜 반갑다. 아까 별이라는 가이드가 너희 가이드니? 우리가 10년 동안 봐왔는데 정말 괜찮은 친구란다. 사막에서 좋은 가이드를 만났구나.”
“아… 뭐, 그렇죠.”
소민은 계속 어제 일이 떠올랐다. 소원은 낙타에게 물었다.
“별이 언니도 낙타 아저씨들이랑 말할 수 있어요?”
“아니, 그런 적은 없어. 너희가 우리랑 얘기했다는 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테니까.”
마침 별이 소원과 소민에게 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마음에 드는 낙타를 골랐나 보네. 어서 타자. 이제 곧 출발할 거야.”
낙타 등에 있는 혹에는 천과 손잡이를 고정시켜 만든 의자가 있었다. 별은 속눈썹이 긴 낙타 위에 소원과 소민을 태우고, 능숙하게 다른 낙타에 올라 앞에서 소원과 소민을 이끌었다. 소원은 낙타에게 속삭였다.
“저희 무거운데… 괜찮아요?”
“너희 둘 정도는 거뜬해.”
“사막 여행은 어때? 재밌니?”
소민은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만을 쏟아냈다.
“재밌긴요, 완전 고생이에요. 본 거라고는 모래, 모래 언덕, 모래 폭풍… 온통 모래뿐이에요. 에휴, 물도 제대로 못 마셔요. 제가 사는 곳은 이렇지 않아요.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도 있어요.”
“참 좋은 곳에서 살고 있구나.”
“여기보다는 좋죠. 근데 아저씨는 이런 데서 어떻게 사세요? 안 힘드세요?”
“글쎄, 난 이곳이 좋단다.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셨거든. 긴 눈썹은 모래 먼지가 눈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고, 넓은 발바닥은 모래에 잘 빠지지 않게 해줘. 너희가 앉은 혹에는 며칠을 굶어도 끄떡없는 영양분을 저장해놓지.”
“우아, 멋지다.”
“난 이 사막에서 사는 것이 감사해. 너희가 사는 곳은 여기보다 좋은 곳이라고 하니 감사할 일이 더 많겠다.”
“그, 그야… 뭐.”
소원과 소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들의 삶이 좋다고도, 감사하다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깐 쉬었다 갈게.”
별과 가이드 일행은 오아시스에서 무리를 멈추게 했다. 낙타를 돌려주는 장소였다. 별은 소원과 소민을 낙타에서 내려주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오아시스 근처에 허리를 꼿꼿이 편 무언가가 보였다.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푸른 기운을 내뿜으며 우뚝 솟아 있었다. 낙타는 소원과 소민을 데리고 선인장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2명이나 태우셨네요.”
“그래, 선인장 형제로구나. 인사하렴. 오늘 나와 함께 여행한 특별한 친구들이란다.”
“하.하.하. 이번에는 선인장이 말을….”
“오, 우리랑 말이 통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정말 특별한 친구들이네. 반갑다.”
“어, 안…녕.”
소원과 소민은 어설프게 인사했다.
“너희 둘 쌍둥이구나? 똑같이 생겼어. 우리도 쌍둥이는 아니지만 형제야. 내가 형이고 내 옆이 동생.”
“사막에 대해 궁금한 거 없어? 다 물어봐! 우리는 모르는 것 빼고 모르는 게 없거든.”
선인장 형제는 유쾌했다. 소원과 소민은 긴장을 풀고 까르르 웃었다. 이내 소원이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너희만 있으려면 외롭겠다.”
“흠, 심심하긴 해. 그래도 혼자는 아니잖아. 우리 형제는 언제나 같이 있으니까. 종종 사막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
이번에는 소민이 물었다.
“같은 자리에만 서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도 나름 바빠. 뜨거운 사막에서 그늘을 만들어야 하니까. 동물 친구들이 와서 쉬었다 가기도 해. 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려면 더 높이 튼튼하게 자라야 하지.”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사막의 물탱크라는 거야. 물이 떨어졌을 때는 우리 안에 가득 찬 수분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
못생기고 가시 돋친 선인장이지만 소원과 소민의 눈에는 멋져 보였다.
쌍둥이 자매와 선인장 형제가 재밌게 이야기하는 사이 별이 왔다.
“선인장 물맛 좀 볼래?”
별은 선인장을 향해 팔을 뻗었다. 선인장 형제는 움찔했다.
“아, 아니요! 목 안 말라요!”
“그냥 선인장이 멋있어서 구경하고 있었어요. 하하.”
“그럼 이제 가자. 조금만 가면 마지막 야영지야.”
소원과 소민은 별이 짐을 챙기는 사이 낙타와 선인장 형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낙타 아저씨, 태워줘서 고마워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았을 텐데….”
“허허. 오랜만에 사람과 이야기해서 즐거웠다. 사막에서의 추억 절대 잊지 마렴.”
“선인장 형제도 안녕, 너희는 정말 멋져!”
“우리가 멋진 건 잘 알고 있어. 너희도 멋진 쌍둥이야.”
“참, 아까 우리를 안 잘라줘서 고마워. 아픈 건 조금 무섭거든.”
소원과 소민은 또 한 번 까르르 웃었다.
여행의 막바지를 향해 걸어가던 소원과 소민의 눈에는 그동안 사막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들어왔다. 바람따라 움직이는 모래 물결, 저 멀리 땅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신기루, 모래 언덕 뒤로 넘어가는 태양…. 전부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사막에서의 마지막 밤, 사막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캠프파이어를 했다. 소심하고 겁 많던 소원은 어디 갔는지 누구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소민은 조용히 별에게 다가갔다.
“언니, 미안해요.”
“뭐가?”
“짜증 부려서.”
“아니야, 원래 많이들 그래.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이 되면 모두 행복해하지.”
“저도 행복해 보여요?”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좋아 보여.”
“사막은 아름다운 것 같아요. 척박하지만 그래서 더 빛나 보인다고 할까요. 저 별도 그렇고, 낙타도 선인장도 그렇고. 이런 곳에서 우리를 가이드 해준 언니도요.”
사막의 밤하늘은 별똥별을 떨어뜨렸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처럼.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별과 사진을 찍었다. 소민은 비행기에 올라타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차례차례 훑어봤다.
“아! 우리 폴라로이드 사진 하나 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어제 사진 찍다가 우리 모습이 보기 좋아서 한 장 찍으셨대. 아까 선물이라고 주시더라.”
소원은 가방을 뒤적거리다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선인장 앞에서 낙타, 별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그 모습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소민은 씨익 웃더니 사진 뒤에 무언가를 적었다.
「사막이 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