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은

나름 세상살이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한 늦깎이 결혼이었어. 하지만 미혼으로 혼자 살 때와, 가정을 꾸려 살 때는 차원이 다르더구나.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끝이었는데,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집안의 맏며느리, 큰엄마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정말 ‘어른’이 되었지. 엄마에게 주어진 수많은 타이틀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바빴고 그 책임감의 무게는 너무 버거웠단다.
아빠는 장남으로서 집안 전체를 살피고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해서 우리 가족은 수입보다 지출이 컸어. 제대로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너무 힘들었지. 그래서 엄마도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엄마가 한 일은 ‘코디’였어.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연수기 등의 필터를 교체하고 청소해 주는 일이야. 엄마에게는 큰 도전이었어.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보지 않고 살았기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단다.
처음에는 너무너무 힘들었어. 더러운 비데 청소를 할 때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사표를 썼지. 엄마가 관리하는 고객은 600~700명이었는데, 사람마다 환경도 성향도 제각각이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코디를 파출부나 청소부로 대하기도 하고,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지체돼서 다음 장소에 늦게 가면 마구 핀잔을 주기도 하고. 차가 고장 나 약속 시각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어. 하루하루가 서러웠지.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머리가 다 빠지더구나.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사랑하는 딸과 아들, 바로 너희였단다.
사무실에서 시달리고 사람에게 시달리고 힘없이 집 계단을 올라가는데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집에 들어가니 너희가 아주 해맑게 웃고 있더라. 너희의 웃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자란 엄마 아빠지만 너희에게는 최고의 엄마 아빠일 테니, 힘들다고 쓰러지거나 도망칠 수 없었어.
너희가 웃어서 엄마도 웃었다. 엄마가 아무리 늦어도 올 때까지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엄마가 오면 옆에 꼭 붙어 있고, 어깨도 주물러주는 아들. 엄마가 힘든지 어떻게 알고 힘내라는 편지를 써주고, 키도 안되면서 의자에 올라가 설거지까지 하는 딸.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몰라.
너희가 없었다면 엄마는 살지 못했을 거야. 너희만 바라보며 살아가다 엄마는 참 하나님을 만났고, 우리 가족 모두 새 삶을 살게 되었지. 그동안 엄마의 삶이 절망적이었던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나 봐.
너희, 엄마가 얼마나 욕심 많은 사람이었는지 아니? 원래 엄마는 떵떵거리면서 보란 듯이 사는 것이 꿈이었어. 그런데 삶이 내 뜻대로 안되더라. 왜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빠져나가는지. 고된 직장에, 큰일도 많이 겪으면서 하나님을 무척이나 갈망했어.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스스로 찾아갔지. 거기서 듣는 설교,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와닿지 않았지만 너무나 절박했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늘 울면서 기도했단다. 그러다 윗집 이웃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알게 되고 참 하나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하니?
지금 우리 가정이 화목하고 형편이 나아진 것은 다 하나님 은혜야. 툭하면 집안에 터지는 큰일도 사라지고, 엄마는 좀 더 편한 일을 하게 되었지. 엄마가 힘들었을 때는 너희 아빠를 챙겨줄 여력조차 없어서 너희에게 미안한 모습도 많이 보였는데, 이제는 우리 네 식구 모여서 웃는 시간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너희가 걱정되기도 해. 엄마 아빠가 살아온 험난하고 고된 세상을 아직 너희 둘은 미처 다 알지 못할 텐데,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만나 큰 희망을 얻은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갖고 굳건히 살아간다면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내리라 믿어.
하긴 너희가 엄마보다 잘하긴 하지. 어찌 보면 꼭 하나님께서 엄마에게 보내주신 선지자 같다니까. 엄마가 잘못한다 싶을 때 바른말로 엄마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고, 엄마에게 사랑의 잔소리까지 하니…. 정말이지 너희는 예나 지금이나 엄마 아빠의 힘이 되는구나.
너희 덕에 엄마는 이웃들한테 칭찬도 많이 들어. 아이들이 인사도 잘하고 옷도 단정히 입는다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자식을 잘 키웠냐고들 해. 엄마가 따로 너희를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시온에서 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잘 커서 엄마 아빠에게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나 봐. 너희에게 해준 것보다 받은 게 더 많아서 미안하고 고맙다.
이제 엄마는 최고의 꿈을 꾼다. 우리 가족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천국에 가는 거야. 아무것도 바랄 수 없던 하늘의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다시 천국에 가는 것. 이보다 더 큰 바람이 뭐가 있겠니? 이 꿈속에 너희와 함께라서 정말 감사하다.
엄마가 너희 덕분에 험난한 세월을 견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자녀들이 있어 고통의 삶을 견디고 계실 거야. 엄마에게 너희가 힘을 주었듯 엄마도 너희도 바르고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자. 그래서 모두 다 같이 천국에 가자. 사랑 많은 큰딸, 애교 많은 작은아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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