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는 약 下

띡띡띡띡
현관 비밀번호 소리가 울렸다. 엄마가 벌써 왔나?
“아빠!”
“혜미야!”
나는 달려가 아빠한테 안겼다.
“아빠 안 보고 싶었어?”
“무지무지 보고 싶었죠!”
아빠는 한 달 일정의 출장을 가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아빠는 일요일에 와야 한다.
“아빠, 근데 왜 벌써 오셨어요? 일요일에 온다고 하셨잖아요.”
“혜미랑 엄마 놀라게 해주려고. 근데 혜미는 학교 안 갔어?”
“오늘 학교 개교기념일이에요.”
“아빠가 딱 맞춰 왔네.”
아빠와 나는 나란히 앉아 쉬지 않고 대화했다. 아빠는 집이 깨끗하다고 좋아했다.
“참, 혜미야. 내일모레 엄마 생일인 거 알지? 실은 엄마 생일에 맞춰서 일 빨리 마치고 집에 온 거야.”
멍하다. 아빠가 아니었으면 엄마 생일을 그냥 넘길 뻔했다. 어쩜 이렇게 엄마에게 관심이 없을까.
학원에 가서 엄마 생일 선물로 뭘 준비할까 계속 생각했다. 준비할 시간도 얼마 없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도 집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아빠를 보고 엄청 놀랐겠지?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아빠 엄마가 같이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혜미야, 엄마 어깨 많이 뭉쳤다. 당신 일하고 와서 집안일까지 하느라고 많이 힘들지?”
엄마는 아빠 말을 듣고 ‘집안일’이 생각났는지 집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봤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집 청소 해놓은 거예요?”
“아니? 당신이 청소한 거 아니었어? 아….”
아빠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있나 봐.”
아빠에게 살짝 웃어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고민이 있다. 엄마 생일 선물. 뭐 하지? 그래… 맞다! 그거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왔다. 아빠다.
「혜미야. 너 오늘 학원 안 간다고 했지?」
“네. 왜요?”
「엄마 생일 선물 사러 갈 건데 같이 가자.」
“좋아요. 근데 뭐 살 거예요?”
「정한 게 없어서 우리 딸 조언 좀 받으려고. 아빠가 학교 앞으로 갈 테니까 전화하면 나와.」
“네.”
아빠 차를 타고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이란 말대로 정말 백 가지 물건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아빠와 나는 한 시간 정도 돌아본 뒤 화장품을 사기로 결정했다. 화장품은, 요즘 엄마의 얼굴과 손이 많이 망가졌다는 나의 의견과 아빠의 생각이 일치해서 결정한 선물이다.
“아빠, 이제 제가 엄마 선물 살 차례예요.”
“응? 여기서 안 사?”
“네. 저는 집 근처 약국에 잠깐 내려주세요.”
“약국?”

집에 와서 아빠와 나는 엄마 생일이 되는 자정에 깜짝 파티를 열자는 계획을 세웠다. 집을 파티장처럼 꾸미고, 케이크도 준비했다. 엄마가 자정에 맞춰 집으로 오게끔, 아빠는 그 시간까지 엄마와 드라이브하고 오겠다고 나갔다.
밤 11시 30분. 아빠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하도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지금 들어간다고. 그리고 엄마는 자기 생일인지도 모른다고.
엄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폭죽을 터뜨렸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는 깜짝 놀랐다.
“엄마, 생일 축하해! 얼른 초 불어, 초 다 녹겠어.”
엄마는 초를 불면서도 어리둥절해했다. 엄마는 진짜 엄마 생일인지 까맣게 몰랐나 보다.
엄마가 딱 12시에 맞춰 왔으면 좋았겠지만, 어찌 됐든 엄마의 생일 파티는 성공이다.
거실에 모여 앉아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사이 12시가 넘었다. 엄마의 진짜 생일날이다. 아빠와 나는 각자 준비한 선물을 엄마 앞에 내밀었다.
“여보, 생일 축하해. 앞으로도 우리 행복하게 삽시다.”
나는 무슨 말을 하지?
“엄마. …다시는 학원 안 빠질게. 그리고 집안일도 돕고…. 암튼 엄마, 생일 축하해요!”
엄마는 내가 준 선물을 바로 뜯어보았다.
“이게 뭐야?”
“음… 이건 아주아주 신비한 약이야. 힘들거나 피로가 쌓일 때 먹는 건데, 엄마가 나한테 준 약이랑은 달라서 맛은 좀 쓰지만 먹으면 바로 피로가 풀리고 힘이 불끈 솟아서 슈퍼우먼이 된대. 엄마 맨날 힘든 일 하는데 매일매일 꼭 챙겨 먹어.”
엄마가 소리 내며 웃었다. 저렇게 웃는 얼굴,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면 웃겨주는 쪽은 항상 엄마였다. 엄마 눈이 촉촉하다. 너무 웃어서 그런가.
“딸, 엄마가 잘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혼내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엄마가 나를 안아줬다.

엄마가 준 약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사실 약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엄마가, 행복을 주는 약 그 자체인지 모른다.
엄마 덕분에 나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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