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궁금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많이 사랑하는 만큼 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엄마입니다.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엄마가 대단해 보입니다.
그럼 제 마음의 VIP, 엄마 정은미 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림 엄마 정은미입니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은 은(銀), 아름다울 미(美)로, 아름답고 착한 사람이 되라고 저희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 ‘은’은 그냥 돌림자예요.

이름처럼 충분히 아름다우십니다. 엄마도 아이일 때가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졸라서 촛불을 켜고 밥을 먹다가 초를 넘어뜨렸어요. 초가 요에 떨어졌는데 요에 불이 붙자마자 번져서 집에 불이 났어요.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불을 꺼줘서 작은방 바닥이랑 자개장롱만 타고 불길이 잡혔죠. 저는 눈썹이 홀랑 타고 얼굴을 데었는데, 흉이 질까 봐 엄마가 얼굴 전체에 치약을 발라주셨어요. 나중에 보건소에 갔는데 임의로 처치하면 안 된다고 혼나고 왔지요. 다행히 크면서 흉터는 몰라보게 옅어졌어요.

크게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학생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때는 중3도 야간자율학습을 했어요. 밤 9시에 야자 끝나고 친구네 아빠 트럭 뒤에 타서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친구랑 ‘벨튀’한 것도 생각나요. 남의 집 벨을 누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렸네요. 하지만 학생 때를 재밌게 보낸 것 같아요.

성장 환경은 어떠했나요?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았어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와 오빠들이 저를 보살펴주었죠.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큰 제재를 하지 않으셔서 저는 자유분방하고 활기차게 자랐어요. 대신 제가 할 일은 알아서 했고 제 행동에 책임을 졌어요. 부모님도 제 선택에 대해 뭐라 하지 않으시고, 늘 믿고 맡겨주셨고요.
초등학교 때 아빠가 해외근로자로 몇 년 일하고 오셨는데, 그래도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어요. 당시 과일과 고기는 물론, 라면이나 짜장면은 엄두도 못 낼 음식이었죠. 옷도 물려 입는 게 당연했어요. 도시락 반찬이 주로 김치였는데, 점심에 남긴 김치가 잘 익어서 하교 후에 맛있게 먹기는 했어요. 제가 중학생이 되니까 부모님은 농사일과 더불어 공장에 나가 일하셨어요.

엄마가 자랐던 시대 상황을 알고 싶어요.

민주화운동이 활발했고, 새마을운동이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988 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등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시대였어요. 서민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었지만요. 고등학생 때는 시내에 나갔다가 데모가 일어나 최루탄 가스를 피해 아무 데나 막 들어갔던 기억이 나요. 대체적으로 혼란스러웠죠.

대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네요. 그냥 열심히 놀고, 동아리 활동 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하고…. 대학교 후문 앞 슈퍼 아저씨가 끓여주던 천 원짜리 라면이 기막히게 맛있어서 자주 갔었죠.
대학교 2학년 때 자취를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20만원을 벌었어요. 유무선 전화기를 사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 집으로 향했지요. 부모님은 깜짝 선물에 무척 기뻐하고 기특해하셨어요. 다음 날 저는 동네에서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답니다. 참 뿌듯했어요. 당시 저에게는 큰돈이었지만 부모님을 위해 썼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결혼하고 처음 아기를 가졌을 때 느낌은 어떠셨나요?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제 배 속에 소중한 생명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연년생 삼 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요?

가장 좋았던 때는 함께 웃으며 사이좋게 이야기꽃을 피울 때예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아팠을 때고요. 어느 부모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이 아픈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에요.

삼 남매 키우는 노하우가 있다면 그 비법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공감해 주고 위로도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는 편이에요. 물론 혼도 낸답니다.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힘들어도 상대가 원할 때는 해주는 희생과, 때로는 가슴 아파도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녀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건강한 미소 그리고 제 옆에 있어주는 것이요.

가족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건강하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열심히 사랑하며 삽시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좀 알아서 하기!

아 참, 그리고 낳아주신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도 해주세요.

엄마 아빠, 항상 사랑해 주고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의치 않은 형편에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모님이 우리 5남매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끝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 심하게 아픈 뒤로 체력이 많이 약해졌네요. 건강 관리 잘해서 우리 가족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 특별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엄마 정은미 님께 감사드립니다. ***



엄마도 저처럼 평범한 소녀였는데 우리를 낳고 키우면서 희생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년생 삼 남매를 키우기 힘들었을 텐데 힘든 내색 한번 없이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물질 같은 것이 아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건강한 미소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 짜증 내고 화냈던 저의 모습이 생각나 죄송했습니다. 이제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밝은 웃음을 날마다 선물로 드리고, 동생들을 잘 보살펴서 엄마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는 의젓한 큰딸이 되겠습니다. 엄마,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