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자취방

저는 대전 사람입니다. 멀리 떨어진 안양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홀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취방을 보고 놀랐습니다. 대전 집 화장실보다 작았기 때문입니다. 자취 생활 두 달 만에 향수병에 걸렸습니다. 2주에 한 번은 대전으로 갔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집이 좋았고, 익숙한 도시 풍경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일요일 저녁, 가족과 헤어질 때마다 너무 아쉽고 슬퍼서 가기 싫다고 떼를 썼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점점 새로운 지역과 환경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특히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엄마와 떨어져 산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나이에 독립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엄마가 없는 자취방은 ‘집’이라기보다 ‘숙소’ 같았습니다.
하루는 엄마에게 전화로 이틀만 자취방에서 자고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바로 그러겠노라 답했습니다. 기다리던 엄마가 왔습니다. 엄마와 자취방에 같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앉기에 너무 비좁았습니다. 냉장고 문 열기도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개의치 않아 했지만 저는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잠자리는 더했습니다. 나란히 누울 수도 없어 저는 가로로 눕고, 엄마는 세로로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짜증이 고조되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엄마가 있어서 움직이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며 겨우 씻고 교복을 입었습니다. 앉아서 저를 가만히 지켜보시던 엄마가 갑자기 제 다리를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취방을 나섰습니다. 학교에 있는 내내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엄마 지금 안양 와 계신다. 대전에서 여기까지 오셨어!”
늘 엄마와 같이 지내는 친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일주일만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 그런 반응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교 후 자취방에 돌아왔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협착해도 엄마가 있어 좋았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안겼습니다. 엄마 품은 포근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 엄마 냄새가 났습니다. 그날 밤은 매우 편히 잠들었습니다.
대전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배웅하고 터덜터덜 걸어왔습니다. 좁은 자취방이 평소보다 배나 넓게 느껴졌습니다. 온기마저 싹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엄마는 공간의 크기를 조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좁으면 널찍하게, 넓으면 아늑하게. 엄마 자체가 저에게 가장 넓고 푸근한 안식처여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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