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일 금요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생각할수록 약이 오른다. 요걸 어떻게 할까?
동생이 학생부로 올라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이래저래 눈치만 보더니 식구들과 친해지고 나서는 이 말 저 말 못하는 말이 없다. 주의를 줬더니 쪼끄만 게 자꾸 까분다. 뭐, 누나나 잘하라고?
식구들이 재원이한테 “형제님은 착한 누나가 있어서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교회에서 착한 척하는 거지 집에서는 아주 못됐다는 둥 자기 방보다 누나 방이 더 더럽다는 둥 나나 식구들이나 듣기 민망한 말만 골라한다.
그래도 누나인 내가 참아야지 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학생 모임이 끝나고 교회 복도를 청소할 때였다. 남학생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 동생의 목소리도 들렸다. 신경이 쓰여 귀를 쫑긋 세우며 밀대를 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내 험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남학생 무리에 있는 동생의 손을 낚아채서 구석으로 끌고 간 다음 다시는 내 얘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자신이 뭘 잘못했냐며 되레 큰소리쳤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뭐,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아우, 그때 한 대 쥐어박았어야 했는데.
집에 와서도 화가 식지 않았다. 누구한테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은데… 엄마한테 할까? 아니다. 엄마는 분명 누나니까 참으라고 할 거다.
여태 동생이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양보하고 참았다. 이제는 참지 않을 거야.
최재원, 두고 봐!
2월 3일 일요일
동생과 냉전이다. 말도 하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다. 동생은 아침부터 엄마에게 잘도 재잘거렸다. 아, 밉다.오후에 학생부 모임도 혼자 갔다. 동생은 모임 시간이 다 돼서야 왔다. 오거나 말거나 아무려면 어때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 지금 내 마음은 썩 좋지 않다.
새해가 되어 다짐한 게 있다. 고등학생이 되는 만큼 좀 더 성숙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자고. 하지만 동생 때문에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
성숙한 성품이 되려면 이런 것도 참아야겠지. 그래, 참자, 참아.
2월 4일 월요일

저녁 식사 후 엄마가 나를 불러 동생과 싸웠냐고 물었다. 엄마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결국은 내 잘못이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항상 재원이 편이다. 한 번이라도 내 입장을 생각해 줄 수 없나?
무조건 누나라고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먼저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내가 먼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만 참아야 하는 거냐고. 억울하고 분하다.
나는 침대에 엎어져 베개로 입을 막고 울었다. 소리가 새어나지 않도록 울음을 삼켰더니 목이 너무 아프다.
2월 5일 화요일
요즘 들어 미연이 자매님이 부럽다. 자매님도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데 둘은 사이가 좋다. 남동생인 도현 형제님은 누나인 미연 자매님의 말을 잘 듣는다. 예의도 바르다. 같은 남동생인데 어쩜 이리 다를까.오늘 미연이 자매님과 이야기하며 내 모습을 돌아봤다. 자매님도 예전에는 남동생과 엄청나게 많이 싸웠다고 했다. 도현 형제님은 태권도를 배우고 있어서 힘도 세고, 키도 크다. 그래서 자매님을 누나로 생각하지 않고 막 대했다고 했다.
그렇게 동생이랑 싸우던 자매님은 생각 생각 끝에, 다른 식구들에게 대할 때와 다르게 동생한테 관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달라지기로 했다나. 그 말을 듣는데 나도 좀 찔렸다.
처음에는 화도 안 내고 다 참았더니 도현 형제님이 더 까불었단다. 그래도 더 참고 참고 또 참고. 와, 자매님이 대단하다. 그러고 나서 자매님이 “그동안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해. 앞으로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누나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니까 이후로 형제님이 점점 변했다고 했다.
자매님은 나보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다고 했다(아이고, 쑥스러워라). 그러니 동생에게도 그렇게 대해보라고.
식구를 이해하는 것처럼 너그럽고 부드럽게?
솔직히 재원이가 심하게 말썽을 부린 것도 아닌데 동생을 다그치고 윽박지를 때가 많았다. 동생이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했던 행동이 어쩌면 동생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른다. 식구들에게는 잘 하면서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누나가 겉 다르고 속 달라 보였겠지. 어쩜 동생과 틀어진 것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나도 내 입장만 생각했지 동생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누나 노릇 제대로 해보자. 내일은 꼭 화해해야지.
2월 6일 수요일

마음을 가다듬고 친절하게 동생을 부른다는 게 고작, “밥 안 먹어?”라니.
예전 같으면 혼자 먹고 치웠을 누나가 밥을 차려주니 재원이도 당황한 것 같았다. 안 먹는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재원이는 못 이기는 척 식탁 앞에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웃는 얼굴로 “재원아, 아직도 화났어? 화 풀어. 앞으로 누나가 잘할게”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끝내 이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계란 접시를 도현이 앞으로 20㎝ 정도 밀어주었다. 이래서 언제쯤 성숙한 성품이 되려나. 내 성품이야말로 반숙이다.
내일 졸업하면 이제 고등학생인데 아직 내 마음은 초등학생인가 보다.
하나님, 제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게 해주세요.

2월 7일 목요일

그리고… 드디어 동생과 화해했다! 누나답게 먼저 손 내밀고 싶었는데 재원이가 선수쳤다.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내 졸업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상자 안에는 ‘고등학교 가서 써’라는 메모와 함께 노트랑 색색의 펜이 들어 있었다. 그냥 막 산 게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노트와 볼펜. 꽤 신경 썼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족한 누나라 미안하고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주는 동생에게 고마워서, 또 하나님께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눈물을 닦았다. 아무튼 오늘 기분은 최고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재원이에게 좋은 누나가 되고, 아름답고 성숙한 성품으로 거듭난 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얼마 못 가 재원이랑 또 다툴 수도 있다. 그때는 내가 먼저 손 내밀 것이다. 재원이는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자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이제야 진짜 졸업한 것 같다. 어린아이같이 좁았던 마음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