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조건

어느 화창한 날, 해와 구름과 바람이 만났습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온 바람이 해와 구름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얘들아, 오늘 내가 예쁜 꽃으로 가득한 꽃밭을 봤는데 하도 예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했다니까.”
바람의 말을 듣고 있던 해가 하늘 아래 한곳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곳이 보이니? 저 땅에는 꽃은커녕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아.”
구름도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맞아. 요즘에는 통 꽃을 보지 못했어.”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해가 말했습니다.
“만약 저기에 꽃 한 송이가 핀다면 나는 꽃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충분히 햇빛을 쬐어줄 거야. 그리고 꽃이 시들지 않도록 항상 보호해 줄래.”
구름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나는 물을 충분히 주고, 가끔씩 그늘을 만들어서 덥지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줄 거야.”
잠자코 듣던 바람이 해와 구름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 그런데 여기에는 꽃이 없잖아. 그래도 꽃이 피면 나도 시원하게 바람을 불어줄게. 꽃이 잘 자라도록 말이야.”
“어?”
해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저게 뭐지? 얘들아, 저기 저 밑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새싹 같은데?”
아래를 유심히 보던 구름이 말했습니다. 바람도 놀라서 말했습니다.
“진짜네! 우와, 이게 몇 년 만에 보는 새싹이야. 그런데, 저 새싹은 자라서 어떤 꽃이 될까?”
“글쎄 모르긴 해도 분명 엄청 아름다운 꽃일 거야. 왜냐하면 내 햇볕을 받고 잘 자랄 거거든.”
구름이 끼어들었습니다.
“새싹은 내가 물을 주고 그늘을 만들어줘야 잘 자랄걸.”
“얘들아, 내 생각에는 말이야, 내가 시원한 바람을 불어줘야 잘 자랄 것 같아.”

“그럼,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누가 저 새싹을 예쁜 꽃으로 키울 수 있는지 내기하자.”
“좋아, 결국에는 내가 성공하겠지만.”
“그래, 과연 그런지 한번 보자고.”
이렇게 해서 해와 구름과 바람의 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해와 구름과 바람은 모두 자신만만했습니다.
먼저 바람이 나섰습니다. 바람은 새싹에게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새싹이 점점 시들어 갔습니다.
“어, 왜 이러지?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면 다들 좋아하는데….”
“뭐야, 새싹이 더 시들시들해졌잖아.”
“맞아, 잘난 척하더니 이럴 줄 알았어.”
해와 구름이 핀잔을 주자 바람도 쏘아붙였습니다.
“치, 너희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이번에는 해가 나섰습니다. 해는 새싹에게 따스한 햇빛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러자 축 처졌던 새싹이 점점 살아났습니다.
“봤지? 새싹이 살아나고 있는 거! 역시 내가 나서야 해.”
의기양양해진 해는 쉬지 않고 햇빛을 비췄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싹이 다시 말라갔습니다.
“새싹이 왜 이러지? 왜 살아나다가 마는 거야?”
“너도 실패구나.”
구름의 말에 해가 우물쭈물하며 말했습니다.
“너도 실패하면 어쩔래?”
“내가 왜 실패해? 똑똑히 봐. 내가 성공할 테니까.”
구름은 새싹에게 물을 주고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새싹이 전보다 생생해졌습니다.
“오! 이것 봐. 진작 내가 나설 걸 그랬나 봐.”
구름은 물을 더 많이 주고 그늘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새싹은 또다시 축 늘어졌습니다. 결국 구름도 새싹을 예쁜 꽃으로 자라게 하지 못했습니다.
“너도 어렵다는 걸 이제 알았지?”
“그래도 거의 성공했는데…. 왜 실패했을까?”
해와 구름과 바람은 실패의 원인이 궁금했습니다.
“정말 이상해. 햇빛을 많이 줘도 살아나지 않았어.”
“비를 맞고 생기가 돌아서 내가 꽃을 피울 줄 알았는데.”
“내 바람을 맞고는 더 시들시들해졌어.”
“아,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그때였습니다. 한 농부가 새싹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 해와 구름과 바람은 농부를 지켜보았습니다. 농부는 새싹 앞에 서서 새싹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도로 가버렸습니다.
“뭐야. 그냥 구경만 하고 가네.”
몇 시간 후, 농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농부는 새싹 앞에 작은 판을 세웠습니다.
“응? 저게 뭐지? 농부가 뭘 세웠어.”
“뭐라고 적혀 있는데?”
해와 구름의 말에 바람이 슝 하고 농부가 세워놓은 판으로 갔습니다. 그 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바람은 손뼉을 쳤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실패한 원인을 알았어! 우리가 다 같이 적절하게 햇빛을 비춰주고, 바람을 불어주고, 물을 줘야 했어!”
바람의 설명을 듣고 해와 구름은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내가 잘한다 생각하고 혼자서 해보려고 한 것부터 잘못이었어.”
“사실… 우리가 다 잘못했지. 이제는 그러지 말자.”
“그래, 이제 새싹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도 알았으니 우리 서로서로 도와서 예쁜 꽃을 피워보자. 나는 하루에 두 번 물을 적당히 내려주고, 해 너는 따뜻하게 햇빛을 비춰주고, 바람 너는 이틀에 한 번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고.”
“그래! 진작 이렇게 하면 됐는데….”
해와 구름과 바람은 부지런히 새싹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해야, 내가 물을 충분히 줬으니까 이제 햇볕을 비춰줘.”
“그다음 나는 시원한 바람을 불어줄게.”
“그럼 나는 다시 물을 주고.”
새싹은 쑥쑥 크더니 연한 잎 사이로 작은 꽃망울을 맺었습니다. 해와 구름과 바람은 더 신이 나서 새싹을 가꿨습니다. 마침내 새싹의 꽃망울이 터져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우와, 우리가 해냈어!”
해와 구름과 바람은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우리 꽃이 시들지 않도록 더 열심히 돌보자.”
“그래!”

아무도 오지 않던 황무지가 어느새 예쁜 꽃으로 가득 찼습니다. 향기로운 꽃향기에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니고 꿀벌들이 부지런히 놀러왔습니다. 해와 구름과 바람은 꽃밭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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