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준 선물 上

“소원아 소민아, 일어나. 밥 먹어야지.”
“엄마, 조금만 더….”
“안 돼. 해가 벌써 중천에 떴어.”
“….”
“얘들아, 어서 점심 먹어라.”
아빠의 근엄한 목소리에 소원과 소민이 뭉그적거렸다. 소원은 눈을 비비며 시계를 봤다. 12시 30분. 소원과 소민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어쩜 너희는 집에서 잠만 자니?”
“좀 쉬면 어때요, 방학인데.”
“엄마, 저희도 휴식이 필요해요.”
“엄마는 너희가 방학을 알차게 보냈으면 좋겠어.”
“여보, 여기 어때? 애들 보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빠는 엄마에게 신문의 한 면을 보여줬다.


“뭔데요? 저도 보여줘요!”
호기심 강한 소민이 발을 동동거리며 아빠 뒤로 달려가더니 얼굴을 쭉 내밀고 신문을 들여다봤다.
“사막 여행?”
“여보, 위험해서 안 돼요.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요즘 많이들 간대. 가이드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나?”
“엄마 아빠도 같이 가면 되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아빠도 같이 가고 싶은데 나이 제한이 있네. 어차피 휴가도 오늘까지라서 못 가고. 사막에는 부드러운 모래 위를 낙타가 여유롭게 걷고, 밤이면 별들이 쏟아지겠지?”
눈이 초롱초롱해진 소민이 방방 뛰었다.
“와, 생각만 해도 신난다! 비행기 타고 가는 거죠? 언니, 우리 가자! 사막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아?”
“엄마 아빠 없이는 무서운데….”
“뭐 준비해야 되지? 선크림, 침낭, 나침반, 모자….”
걱정 가득한 소원과 달리 소민은 내일 당장이라도 떠날 듯이 바쁘게 준비물을 떠올렸다.


뜨거운 바람이 소원과 소민의 얼굴을 덮쳤다. 소민의 바람대로 사막에 온 것이다. 소원은 울상이었다.
“소민아, 모래밖에 없잖아. 여기서 어떻게 지내. 나 무서워.”
“엄살은. 우리랑 같이 사막 여행 온 사람들 안 보여? 뭐가 무섭다고. 곧 있으면 우리 담당 가이드가 올 거야. 이름이 뭐랬더라? 한….”
“안녕! 너희가 이소원, 이소민이니?”
누군가 소원과 소민에게 다가왔다.
“네.”
“나는 너희 가이드 한별이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안녕하세요.”
“저희도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소민이고, 언니가 소원이에요.”
“너희 정말 똑같이 생겼구나.”
“성격은 정 반대예요. 참,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나야 그렇게 불러주면 고맙지.”
별은 소원과 소민에게 사막에서의 일정과 규칙을 설명했다. 5박 6일 동안 소원과 소민은 80㎞ 거리의 사막을 걷게 된다. 첫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는 걸으면서 이동하고 다섯째 날에는 낙타를 타고 이동한다. 소민은 낙타를 탄다는 말에 귀를 쫑긋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도 있다. 첫째, 정해진 양의 물을 아껴 먹을 것.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 둘째, 가이드의 지시에 잘 따를 것. 사막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를 따라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더 힘들 거야. 자, 가자!”
쌍둥이 자매의 사막 여행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모래 위를 걷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모래뿐이었고, 지글지글 끓는 태양이 황갈색의 사막을 더 적막하게 장식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소원과 소민의 발자국을 지웠다.
밤이 찾아왔다. 별은 정해진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사막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도 군데군데 텐트를 쳤다. 소원과 소민은 털썩 주저앉아 불을 쬐었다. 별은 지도를 보고 나침반과 하늘을 번갈아 보다 한쪽 모래 언덕을 가리켰다.
“우리는 내일 저쪽으로 갈 거야.”
소원은 그곳을 한참을 쳐다봤다.
“별이 언니, 사막에서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달과 별이 길을 알려줘. 저기 국자 모양 같은 별자리 보여? 북두칠성이야. 많이 들어봤지? 북두칠성의 맨 끝에 있는 별이 북극성이야. 저걸 보면 어디에서든 북쪽을 찾을 수 있어.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상식이니까 잘 알아둬.”
소원과 소민은 하늘을 보며 북극성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사막의 하늘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눈부신 별들을 품고 있었다.
밤하늘에 감탄한 것도 잠시, 지칠대로 지친 소원과 소민은 침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막에는 바람에 스치는 모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똑같은 하늘, 똑같은 태양, 똑같은 모래. 사막은 마음까지 공허해질 만큼 끝없이 황량했다. 둘째 날, 셋째 날에도 지루한 하루가 계속됐다. 나흘째, 모래 언덕 너머로 태양이 고개를 들었지만 소원과 소민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소원아, 소민아, 어서 일어나. 오늘도 열심히 걸어야지!”
별이 활기차게 소원과 소민을 일으켰다. 소민은 못마땅하게 일어나 또다시 사막을 걸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볕에 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흩날리는 바람은 사막의 지형을 계속 바꾸었다. 잘 가고 있는 건지, 헤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소민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캑캑. 언니, 나 물 한 입만 주면 안 돼? 내 물 다 먹었어.”
“어쩌지, 나도 없는데.”
“별이 언니, 물 있어요? 저 목말라 쓰러질 것 같아요.”
“내 거 조금 남아 있어. 이거라도 먹고 목 좀 축여. 그런데 이번만이다. 사막에서는 물을 쉽게 구할 수 없어. 그래서 규칙에도 물을 아껴 먹으라고 한 거야. 하루에 정해진 만큼만 물을 배급 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때나 마음껏 먹을 수 있던 물을 먹지 못하다니, 소민은 짜증이 났다. 그때 갑자기 별이 소리쳤다.
“다들 모자 꾹 눌러 쓰고 고개 숙이세요! 손수건으로 입 막고요! 절대 일어나면 안 돼요!”
거대한 모래 폭풍이 몰려와 소원과 소민 일행을 덮쳤다. 한참 후 사막이 고요해지자 소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게 무슨 여행이야! 계속 모래 길만 걷고, 그렇다고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도 제대로 못 먹잖아.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푹 쉬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백날 걸어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소… 소민아, 왜 그래. 우리 이런 거 각오하고 온 거잖아.”
“소민아, 이게 사막 여행의 묘미야. 여행이 끝나면 분명 여기서 얻는 게 있을 거야.”
“뭘 얻어요! 아, 모래는 많이 얻어갈 수 있겠네요.”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은 게 있어야죠.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을 4일 내내 걷기만 했어요.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좋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여기서 집에 가는 길은 하나뿐이야. 지금 우리가 가야 하는 길로 이틀을 더 가는 거.”
“….”
“빨리 오늘 야영지로 가서 쉬자. 서두르지 않으면 진짜 집에 못 갈지도 몰라.”
소원과 소민, 별은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캠프를 설치하고 나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소원과 소민은 모닥불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소원은 소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걸었다.
“와, 사막의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워. 그치? 별이 쏟아질 것 같아. 아빠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별이 언니는 언제 들어갔지? 많이 피곤했나 보다.”
“…나 때문에 별이 언니 화났으려나? 내가 좀 심했지?”
“괜찮아. 힘들어서 그런걸, 뭐. 별이 언니도 이해할 거야.”
“언니는 여기 올 때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지금은 나보다 더 신났네.”
“넌 안 신나? 걷는 게 힘들긴 해도 왠지 특별하잖아. 참, 내일은 네가 고대하던 낙타 타는 날이다.”
“맞다! 그나마 지루하지는 않겠어.”
“낙타 타고 기분 좀 풀어. 이왕 여행 온 거 재밌게 놀다 가야지. 여행도 이제 끝이다. 내일을 위해 우리도 빨리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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