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보물찾기 上


“들었어? 그 건물 있잖아, 이번에 △△고등학교 가을축제 때 아예 학생들한테 개방한대!”
생생 정보통 철민이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입수한 정보를 쏟아냈다.
그 건물이란, 우리 학교 옆 마을 그러니까 강원도 정선군 ○○읍에 있는 △△고등학교 뒷산에 있는 3층 건물을 가리킨다. 산자락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그 건물은 원래 산에 스키장을 만들려고 지었다가 눈사태가 나는 바람에 위험한 지역으로 판단되어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가서 그 건물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거야!”
“강철민, 너는 고등학생이나 돼가지고 그 뻥을 믿냐? 건물은 지어졌겠다, 없애자니 또 돈 들겠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라도 사람들 이목 좀 끌어보려고 기업에서 꾸며낸 상술 아니야. 너는 저번에도 갔다 왔다면서 또 가려고?”
“아무렴 어떠냐, 재미로 가보는 거지. 우리 고2 올라가면 이럴 시간도 없을걸? 즐길 수 있을 때, 이런 낭만 좀 즐겨봐. 이호범, 현실적인 차산남 같으니라고.”
“차산남은 또 뭐야?”
“차가운 산골 남자.”
어이없다. 뭐, 여기가 산골이 맞긴 하다. 학교도 별로 없어서 한 시간 거리인 옆 마을 △△고등학교와 우리 학교는 체육대회도 같이 하고, 서로의 학교 축제를 마치 같은 학교 축제인 양 함께 즐긴다. 우리 학교 축제는 끝났다. 이제 △△고 축제에 가면 소문으로만 듣던 그 건물의 진상을 보게 된다.
그 건물은 지어진 지 2년 정도 됐다. 몇 개월 전부터 △△고 학생들, 등산객이나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그 건물을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사람들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건물에 들어가면 스피커에서 질문하는 음성이 나온다. 미스터리 퀴즈의 시작이다. 질문을 듣고 답하면서 점수를 얻게 되고 1층과 2층, 3층 입구까지 그냥 갈 수 있다. 그러나 3층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은 앞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3층 문 안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한국지리 시간. 교과서에 강원도 정선군이 나왔다.
“과거에 정선군은… 아! 여러분, 혹시 정선군에 있는 △△산 건물 이야기 들어봤나요?”
“당연하죠!”
“그거 인터넷 검색어 1위 한 적도 있잖아요.”
“저희 내일 △△고 축제 때 거기 꼭 갈 거예요.”
“선생님도 가보셨어요?”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너나없이 대답했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아직 안 가봤어요. 선생님 친구가 갔다 왔는데 8점 맞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소문으로는 100점이 만점이라더만. 어이쿠,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수업합시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자마자 철민이가 내 자리로 달려왔다.
“이호범, 들었지? 100점이 만점이래. 근데 8점이 뭐냐, 8점이. 큭큭.”
선생님 친구라면 마흔 살은 넘었을 것이다. 뭘 어떻게 대답했길래 8점이 나왔을까? 대체 무슨 질문이지? 우리 같은 학생이 가면 점수를 받을 수는 있는 걸까?
“이, 호, 범!”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갑자기는 무슨?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황당하다는 듯 쏘아보는 철민이를 보니 차마 뭐라 못하겠다.
“아… 미안.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이 형님이 기꺼이 사과를 받아주지. 암튼 내일이다. 다른 데로 빼면 안 돼, 알았지? 그리고… 큼, 어머님께 말씀드려서 맛있는 거 많이 싸 오고.”
내일은 △△고등학교 축제 날. 고로 그 건물에 가는 날.

애들 소풍도 아니고 고등학교 축제라는데, 엄마가 기어이 도시락을 싸겠다고 아침부터 난리다.
“엄마, 학교 축제 때 무슨 도시락을 싸 가요? 거기 먹거리 장터 같은 것도 열려요.”
“거기서 먹는 게 간식이지, 밥이니? 아침밥도 안 먹고 다니면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으면 엄마 속상해. 근처에 식당이라고 해봐야 겨우 분식집일 텐데 가져 가. 철민이도 맛있는 거 싸오라고 했다며.”
“도시락 통 갖고 다니기 귀찮단 말이에요.”
“요새 애들 가방은 등산가방만 하면서 든 건 없더라. 도시락 통 몇 개 들어간다고 티도 안 나겠더만.”
와, 우리 엄마는 절대 말로는 당해낼 수 없다.
“보온병에 따뜻한 국물 있어. 아! 너 축제 간다고 하니까 아빠가 용돈 챙겨주고 출근하셨어. 여기. …감사하다고 문자라도 드려.”
“네. 저 갈게요.”
“…아침밥 먹고 갈래?”
“아시잖아요, 안 먹는 거. 엄마는 저 아침 안 먹는 거 뻔히 알면서 왜 맨날 차려 놓으세요?”
“아들 아침 안 먹고 가서 맺힌 한이 오늘은 풀리려나 해서 그런다. 언제 들어와?”
“몰라요. 오늘 안에는 오겠죠.”
나는 귀찮다는 듯 대답하고 나왔다. 아침마다 이런 대화다. 밥 먹어라, 안 먹어요, 언제 오냐, 오늘 안에요. 매일 똑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도 똑같이 묻는 엄마가 신기하다.
“이호범! 지금 시간이 몇 시냐? 내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버스정류장에서 철민이를 만나기로 한 시각은 10시. 현재 시각은 10시 5분.
“야, 겨우 5분 지났어.”
“나 9시 50분에 왔단 말이야! 형님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그동안 네가 약속을 어긴 횟수와 시간을 합쳐서, 내가 얼마나 맘고생했었을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나저나 오늘은 확실히 짚고 가자. 생일은 내가 더 빠른데, 왜 네가 자꾸 형님이래?”
“그야, 내가 키가 좀 더 크고, 좀 더 아니 훨씬 잘 생겼고….”
“나 간다, 계속 떠들어라.”
“야! 같이 가!”
철민이는 내 가방 속에 도시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말투가 달라졌다. 사나이가 큰일을 하다 보면 약속 시간에 늦을 수도 있는 법이다,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느냐 하면서.
철민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신다. 아무래도 꼼꼼하게 철민이를 챙겨주실 시간이 없다. 철민이는, 항상 엄마가 뭘 챙겨주는 나를 부러워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간식거리를 싸줄 때 철민이 것까지 챙겨줬다.
“야야, 조심히 걸어. 도시락님 흔들리실라. 나 아침에 엄마 아빠가 용돈 두둑하게 주셨다, 너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오늘 간식은 내가 다 쏜다!”
아싸, 내 용돈 굳었다.
△△고등학교 축제는 우리 학교와 별 다를 바 없었다. 과학쇼, 그림 전시, 노래랑 마칭 밴드 공연 이런 정도. 다시 말하면 재미없다. 적당한 데 자리 잡고 도시락을 먹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역시 어머님 음식 솜씨는 최고라니까! 문자 드려야겠다, 흐흐.”
“그러시던지. 뭐라 보낼 건데?”
“어머님이 도시락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외딴 마을 어느 한 학교에서 지루해서 쓰러지고, 배고파 쓰러질 뻔했습니다. 어머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풉. 야, 너 진짜 그렇게 보내게?”
“왜, 사실이잖아! 고등학교 축제라고 은근 기대했는데, 우리 학교도 그렇고 다리만 아프다. 오늘 하루 수업 안 했다는 걸로 만족해야지. 아, 배불러. 행복해.”
진짜 구김살 없는 녀석이다. 우리 엄마를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않나, 넉살 좋게 문자까지 보내지를 않나. 저래서 우리 엄마도 철민이를 좋아하는지도.
“자, 그럼 이호범 군. 이제 슬슬 가볼까? 사실 그게 오늘 여기에 온 최종 목적이니까.”
“애들 줄 서 있는 거 아니야?”
“훗, 내가 누구냐. 이미 시장 조사 끝났어. 우리 학교 애들 거의 그 건물 갔다 왔더라고. 나처럼 한 번 더 도전해보겠다는 애들도 꽤 있는데, 여기 오자마자 첫 코스로 간다더라. 지금 가면 줄은 조금 서야겠지만 그리 오래 안 기다려도 될 거야.”
“너는 정말… 대단해. 진로를 그런 쪽으로 잡아 봐.”
“네가 이제야 이 형님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우리는 △△고등학교 뒤쪽으로 갔다.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갔다. 그 건물이다!
“다 왔다.”
“으응.”
좀 놀랐다. 그 건물은 생각보다 크고, 호화로운 저택 같았다. 말이 3층이지, 높이는 6층처럼 보인다.
“들어가자!”
“자, 잠깐. …철민아, 우리 10점도 못 넘으면 어떡하지?”
철민이가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씨익 웃는다.
“이야, 이호범. 너 겁먹은 거냐? 너한테 이런 면도 있다니, 이거 이거 들어가기도 전에 대단한 보물을 찾은 기분인데!”
“됐다. 말을 말자.”
난 걱정인데 철민이는 만사가 참 편하다. 저렇게 항상 실실 웃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철민이를 보고 있으면 심각했던 마음도 한결 놓인다.
건물 안은 예상대로 사람이 많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어른들도 보였다. 그리고 방문 같은 문도 많다. 스키장 숙소로 쓰려고 했던 건물인가 보다.
나는 입구 쪽에 서서 어떤 식으로 이 미스터리 퀴즈가 진행되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큰 문이 5개 있고, 그 문들 위에는 빨간색과 초록색 램프가 달려 있다. 초록색 램프가 켜지면 사람이 들어가고, 사람이 들어가면 빨간색 램프가 켜진다. 15분 정도 지나면 다시 초록색 램프가 들어오고, 문 앞에 줄 선 사람들이 차례로 문 안으로 들어간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철민이와 나도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한쪽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왔다. 그러고는 맨 오른쪽 줄에 서 있던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실격입니다.”
그 남자는 다시 문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실격당한 남자아이는 우리가 서 있는 입구 쪽으로 나왔다.
“새치기 좀 한 것 가지고. 쳇.”
새치기? 질서를 안 지켜서 그런가? 아, 질서를 지켜야 하는구나!
“이호범, 우리도 이제 줄 서자.”
철민이는 멍하니 서 있던 내 등을 치더니 가장 짧은 줄에 나를 세웠다. 철민이는 내 옆줄에 섰다. 우리는 먼저 나온 사람이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어느덧 내 앞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이 내 차례인 것이다. 철민이 앞에는 5명 정도가 서 있다.
“휴.”
초록불이 켜졌다.
“이호범!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와!”
기분 나쁘지만 저럴 때면 정말 철민이가 형 같다.
“휴.”
드디어 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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