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사랑 재기 下


도니 아저씨는 우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밤늦도록 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르신, 톨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후, …일전에도 토야가 톨이 문제로 찾아왔다네. 자네가 먼저 떡갈나무 도토리를 가져갔다고, 치치와 같이 자네를 골탕 먹이려 한다더구만.”
“어이쿠, 그냥 장난 정도의 골탕이면 저도 웃고 넘어가지요. 한두 번으로 그쳤으면 모를까, 이건 나쁜 짓이에요.”
“톨이는 부지런하지만 너무 욕심을 부려서 늘 걱정이었다네. 게다가 치치도 걱정이야. 치치도 남모를 상처가 있지 않은가.”
“그건 압니다만… 톨이와 치치를 위해서도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맞는 말이네. 자네는 일단 집으로 가서 쉬게나. 내가 먼저 톨이를 만나보고 자네에게 기별함세.”
한편 톨이와 치치는 숲 속 깊은 곳에 숨어 목청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어요.
“야, 너는 어떻게 말도 안 해주고 혼자 가버릴 수 있어?”
“내가 거기서 말했으면 도니 아저씨가 내 목소리를 들었을걸? 그럼 꼼짝없이 걸린다고, 이 바보야! 너야말로 도니 아저씨네가 쿵쿵대며 오는 소리도 못 듣니?”
“뭐, 바보? 만약 아저씨가 도토리 훔쳐간 걸 알게 되면, 나는 네가 시켰다고 말할 거야.”
“무슨 소리? 네 잘못이야, 네가 다 훔쳤잖아! 그러니까 네가 벌을 받아야지.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안 그래?”
“뭐?”
“나 피곤해. 이만 집에 간다.”
“야, 치치! 어디 가!”
힘없이 상수리나무 집으로 돌아온 톨이는 온몸을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한낮에 눈을 뜬 톨이는 나무 구멍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어요. 혹시 도니 아저씨가 잡으러 온 건 아닌지 무서운가 봐요. 그런데 도니 아저씨가 아니라 토야가 나무 밑을 서성이고 있네요.
“토, 토야?”
“어? …안녕?”
톨이는 나무 밑으로 내려왔어요. 톨이와 토야는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어요.
“미안해!”
“미안해!”
톨이와 토야가 동시에 말했어요.
“…네가 뭐가 미안해.”
“내가 네 기분도 모르고, 무조건 네 잘못이라고 다그쳤잖아. 먼저 네 마음부터 달래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나야말로. 그런데 사과하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거야?”
“사과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못 왔어. 아침에 우 할아버지가 오늘은 꼭 사과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너랑 같이 할아버지한테 와달라고 부탁하셨어.”
“우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도 너를 본 지가 오래됐다고, 보고 싶으신가 봐.”
“…알았어.”


톨이는 토야와 함께 우 할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우 할아버지는 톨이를 기쁘게 맞아주었죠. 그리고 자신의 뿔에 톨이를 앉히고 숲을 거닐며 이야기했어요.
“그래, 톨이야. 계획대로 도니 아저씨한테 복수하니 기분이 좋던?”
“네? 할아버지, 알고… 계셨어요? 그, 그럼 도니 아저씨도 아세요?”
“먼저 내 질문에 답해다오. 나는 네 마음이 어떤지가 더 궁금하구나.”
“…아니요. 기분이 하나도 안 좋았어요. 처음에는 화나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아, 정말 부끄러워요.”
“원래 화가 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법이란다. 화를 가라앉힌 후에야 제대로 된 생각이 들지. 헌데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왜 바로 그만두지 않았지?”
“치치 때문이에요! 치치가 자꾸 도니 아저씨네 도토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잖아요.”
“치치가 그렇게 말했구나. 그럼 모든 게 치치 때문이니?”
톨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이 할아비는 많은 생각을 했단다. 톨이가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도니 아저씨네 집에 모아져 있던 도토리를 보니까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닌지, 어렵게 도토리를 모으다가 손쉽게 많은 도토리를 얻는 데 재미가 들린 건 아닌지,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톨이는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얼굴이 빨개져 있네요.
“치치는 내가 따로 만나 이야기해 보마, 치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 톨이는 치치를 잘 알고 있니?”
“치치요? 치치는… 가끔씩 인사는 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건 제가 떡갈나무 도토리 때문에 화났던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치치는 날개를 다쳐서 잘 날지를 못한단다. 여름에 폭풍우가 왔을 때, 그때 다쳤지. 가족들도 잃었어. 겨울을 나려면 도토리를 많이 저장해둬야 할 텐데, 혼자서 많이 힘들 게야. 오래 날면 금방 지치거든.”
“그런 말 안 했는데….”
“가슴속 깊이 있는 아픔은 말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아마 치치는 톨이 네가 부러웠을 게다.”
“치치가 저를요?”
“혼자서도 날쌔게 도토리를 한가득 모으잖니? 몇 개만이라도 치치에게 나눠주었다면 치치가 고마워했을 거다. 어리석은 꾀는 부리지도 않았을 테지.”
“그래서 저에게, 다른 동물에게도 도토리를 나눠주라고 하셨던 거군요. 저는… 저밖에 생각할 줄 몰랐어요.”
톨이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자, 그럼 이제 도니 아저씨에게 가서 사과하지 않겠니?”
“네, 그럴게요. 감사해요, 할아버지.”
“허허. 나도 톨이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톨이는 도니 아저씨한테 그냥 갈 수 없었어요. 모아 두었던 도토리를 입속에 꽉 채워서 도니 아저씨 집으로 갔지요. 톨이는 도토리를 내려놓고 도니 아저씨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아저씨가 빙그레 웃네요.
어! 저기 치치가 날아오고 있어요. 치치의 얼굴이 눈물범벅이에요.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아저씨네 도토리를 훔치자고 톨이한테 말했어요. 톨이는 날쌔서 아저씨 도토리를 금방 빼내올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근데… 아저씨가 저를 챙겨주시려고 도토리를 따로 모으고 계시는 줄 몰랐어요. 우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정말…. 엉엉. 죄송해요.”
치치는 땅에 내려오자마자 쉬지 않고 말했어요. 도니 아저씨는 치치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어요.
“엉엉, 톨이야. 속여서 미안해. 네가 갈참나무 근처에 모아 둔 도토리 있잖아. 실은 내가 하나씩 우리 집 근처로 몰래 옮겨놓고 있었어. 정말 미안해. 엉엉.”
톨이도 당황한 눈치네요.
“저… 치치야. 그 도토리는 너 다 가져. 어차피 도니 아저씨가 너 주려고 하셨다며. 그리고 난 이미 모은 도토리가 많아. 갈참나무 말고도 저장고가 여러 개 있거든.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어. 처음부터 너를 챙겨줄걸.”
“훌쩍, 아니야.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도토리를 날름 가져가.”
“옳지, 이 녀석들 말 한 번 잘한다.”
도니 아저씨가 갑자기 쩌렁쩌렁하게 말하는 바람에 톨이와 치치는 깜짝 놀랐어요.
“너희가 잘못한 건 알긴 잘 알고 있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알겠지? 톨이는 혼자 욕심부리지 말고 주위 친구들을 한번씩 돌아봐. 이 숲은 말이야,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평화롭게 유지되는 거야. 치치도 마찬가지다. 너는 상처받은 동물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똑똑한 머리로 잔꾀 부리지 말고, 다른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해 봐. 사실 너보다 약하고 힘든 동물들이 많아. …둘 다 알아들었으면 씩씩하게 대답하도록!”
“네!”
“네!”

바람의 숲 계곡에서 톨이와 토야 그리고 치치와 숲 속의 동물들이 숨바꼭질하며 놀고 있어요. 다 함께 노는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여요. 가을바람도 즐거운 듯 나뭇가지에서 도토리를 떨어뜨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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