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어요. 바람이 살짝만 스쳐도 무성한 나뭇잎들이 사락사락해서 꼭 바람이 노래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숲 속 동물들은 이 숲을 ‘바람의 숲’이라고 불렀어요.
“아함, 잘 잤다.”
바람의 숲 상수리나무 구멍에서 목소리가 들리네요. 아, 톨이로군요! 톨이는 바람의 숲에서 제일 빠르고 부지런한 다람쥐예요. 톨이는 기지개를 쭉 펴고 상수리나무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서두르는 걸 보니까 아침부터 바삐 할 일이 있나 봐요.
나무 사이사이로 가로질러 가던 톨이는 노루, 우 할아버지와 마주쳤어요. 우 할아버지는 아주 인자하고 지혜로운 분이에요. 바람의 숲 동물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우 할아버지를 찾아가지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호, 톨이구나! 어제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오늘 아침은 무척 상쾌하지? 근데 아침 일찍부터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는 게냐?”
“떡갈나무 도토리를 주우러 가요. 어제 비가 와서 떡갈나무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을 거예요. 빨리 가서 주워 오려고요.”
“아이고, 부지런해라. 역시 톨이답구나. 참, 엊그저께도 도토리를 한 덩이 물어가지 않았니?”
“네, 맞아요.”
“할아비 생각에는 톨이가 이미 꽤 많은 도토리를 모았을 것 같은데….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니?”
“아니요! 제가 애써서 주운 걸 아깝게 왜 줘요? 그리고 겨울을 나려면 아직 더 많이 모아야 한다고요.”
그래요, 톨이는 바람의 숲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욕심도 가장 많아요. 누구에게 뭘 줘본 적이 없다니까요.
“그래그래, 부지런히 많이 모을수록 좋은 일이지. 그런데 다른 동물들도 겨울을 나려면 곡식을 모아야 한단다. 톨이가 조금 양보하고 나눠주면 더 좋지 않을까? 톨이는 발이 빠르니까 얼마든지 멀리 나가 도토리를 구할 수 있잖니.”
“멀리까지 나가려면 얼마나 힘든데요. 할아버지,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누가 먼저 와서 도토리를 가져갔으면 어떡해요. 나중에 봬요.”
“조심히 가거라. …후.”

톨이는 날쌔게 달려 떡갈나무에 다다랐어요. 마침 토야가 떡갈나무를 지나고 있네요. 보드라운 털을 가진 토끼, 토야는 귀를 쫑긋 세우고 톨이에게 반갑게 인사했어요.
“톨이야, 안녕? 좋은 아침이야.”
“토야도 안녕? 근데 너 혹시 여기서 도토리 못 봤어? 분명 땅에 떨어졌을 텐데, 하나도 보이지 않아.”
“도토리? 아! 아까 도니 아저씨가 가져가셨어. 가족들을 챙겨주시려나 봐.”
도니 아저씨는 풍채 좋고 목소리가 우렁찬 멧돼지예요. 떡갈나무 근처에는 도니 아저씨 가족이 살지요.
“뭐? 그건 내 거야! 내가 가져가려고 했다고!”
“에이, 숲 속 열매인데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니? 여기서는 도니 아저씨 집이 더 가깝잖아. 당연히 너보다 먼저 발견하고 가져가신 거지.”
“나는 어제부터 떡갈나무 도토리를 가져가려고 마음먹고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야. 아저씨 나빠!”
“너는 이미 도토리도 많이 모았잖아. 설마 혼자서 바람의 숲 도토리를 독차지할 생각은 아니겠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봐. 도니 아저씨네 가족은 먹기 좋은 열매가 있으면 우리에게 나눠주시기도 하잖아. 정 그러면 너도 기분 좋게 양보했다고 생각해.”
“그렇게 남한테 맨날 나눠주니까 도니 아저씨네가 가난한 거야. 에잇, 몰라!”
톨이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어요. 토야가 톨이 집까지 따라와 톨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톨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가 봐요.
톨이 집 나뭇가지에는 치치가 앉아 있었어요. 치치는 새들 중에 영리하기로 유명한 어치예요. 치치도 꾀가 많아요.
“어머, 톨이야. 표정이 왜 그래? 혹시 토야랑 싸웠니?”
“그런 거 아니야.”
토야가 대답했어요.
“내가 어제부터 가져가려고 생각했던 도토리를 도니 아저씨가 가져갔다잖아.”
톨이가 씩씩대며 말했어요.
“진짜? 도니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나쁘네.”
“그치?”
“톨이 너, 가만히만 있을 거야?”
“뭐?”
“도니 아저씨가 먼저 잘못했잖아. …아저씨 좀 골려줄까?”
“너희 말이 좀 심하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야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거잖아. 그것 때문에 도니 아저씨를 골려주겠다고?”
토야가 쏘아붙였어요. 치치는 능청스럽게 대꾸했어요.
“난 그저 톨이를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톨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번 일을 바보같이 그냥 넘길 거야?”
“나, 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톨이야!”
“토야, 넌 그만 너희 집에 가.”
토야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어요. 토야는 톨이에게 뭐라고 말할 듯하더니 집으로 깡충깡충 뛰어갔어요.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토야는 괜찮을 거야. 그보다 지금 톨이 너에게는 도니 아저씨 문제가 더 중요해.”
“알았어. 그럼 어떻게 아저씨를 골탕 먹이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도니 아저씨가 네 도토리를 가져갔으니까, 너도 도니 아저씨 집에 있는 도토리를 가져오면 돼.”
“그거 괜찮은 방법인걸? 좋아, 그럼 언제 가지?”
“해가 지면 가자. 도니 아저씨네는 항상 그때쯤 외출하더라고.”
톨이와 치치는 계획을 짰어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톨이와 치치는 도니 아저씨 집 근처를 기웃댔어요.
“역시 다들 어디 간 모양이군. 톨이야, 빨리 가서 뒤져봐. 도토리가 나올 거야.”
“저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거 나쁜 짓이잖아. 토야 말도 맞는 것 같고.”
“무슨 소리야, 네가 빼앗긴 도토리를 되찾아오는 건데? 이건 정당한 일이야. 아까 토야가 그렇게 가버려서 신경 쓰이나 보구나? 토야도 참, 친구라면서 네 편 좀 들어주면 안 되니? 괜히 친구 마음이나 불편하게 만들고.”
“…맞아. 토야는 너무해. 내가 겨울을 나려고 열심히 도토리를 모은다는 것도 알면서.”
“휴, 마음 풀어. 일단 우리는 할 일부터 하자고.”
치치는 도니 아저씨 집 쪽으로 톨이의 등을 떠밀었어요.
“어서 구석구석 뒤져봐. 도토리가 있을 거야.”
“으응. 근데 너는 같이 안 찾아?”
“이 일은 톨이 너를 위한 거야. 나는 방해하지 않을게.”
톨이는 주변을 둘러봤어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토리는 보이지 않았어요.
“톨이야, 저기 낙엽 사이!”
치치 말대로 낙엽들을 뒤적이자 도토리가 나왔어요. 톨이는 머뭇거렸어요.
“톨이야, 어서!”
톨이는 도토리를 하나씩 입에 넣었어요. 톨이의 볼이 터질 것만 같네요.
“이제 가자.”
톨이는 입속에 도토리를 잔뜩 담고, 치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어요.
“헉헉, 숨차다.”
“수고했어, 톨이야. 어때, 기분 좋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다음이라고?”
“뭐야, 오늘 하루로 끝내려고 한 거야? 너 그 떡갈나무에서 도토리가 얼마나 많이 떨어졌었는지 모르는구나? 내가 봤는데, 이것보다 몇 배는 더 있었다고. 그 많은 걸 도니 아저씨가 다 가져간 거야, 하나도 안 남겨놓고. 아저씨는 정말 욕심쟁이야.”
“그, 그래.”
“그나저나 도토리는 어디에 보관할 거니?”
“갈참나무 근처에 저장고가 하나 있어. 거기에 둘까 해.”
“오늘 많이 피곤했지? 내가 운반하는 걸 도와줄게.”
“고마워.”

그날 이후 톨이는 치치와 매일매일 만나 놀았어요. 한 번씩 도니 아저씨 집에 가서 도토리도 잔뜩 챙겨오고요.
톨이와 치치가 또 도니 아저씨 집에 왔네요. 톨이는 언제나처럼 입속에 도토리를 넣었어요. 앗, 저기 도니 아저씨 가족이 돌아오고 있어요! 치치는 도니 아저씨를 보자마자 포드닥 날아가 버렸어요. 정신없이 도토리를 챙기던 톨이는 아저씨를 보지 못했어요. 우렁찬 도니 아저씨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뒤늦게 눈치챘지요. 톨이는 허겁지겁 수풀 쪽으로 도망갔어요. 하지만 도니 아저씨가 밤톨처럼 작은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말았네요.
“설마, 톨이?”
도니 아저씨는 낙엽 더미를 들추었어요. 역시나 도토리가 많이 보이지 않았어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