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종원이, 아빠는 평상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우리 셋에게 시골의 밤하늘은 경이롭다. 가을밤이 쌀쌀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순돌이는 언제 집으로 돌아왔는지 평상 옆에 팔자 좋게 누워 있다. 외삼촌과 외숙모, 외할머니와 엄마는 저녁 내내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만 한다. 외삼촌과 외숙모에게는 늘 보는 하늘이라 별 감흥이 없나 보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외할머니랑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외할머니도 엄마 옆에 있는 것 같다.
“저기 사각형으로 밝게 빛나는 별 4개 보여? 저게 페가수스자리야, 가을의 길잡이 별. 또… 십자 모형으로 빛나는 별들 있지? 저건 백조자리야.”
“오, 문종원. 우리 집안에 천문학자 나겠다.”
“누나, 이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설마 고등학생이나 돼서 모르는 건 아니겠지?”
“어쭈, 너 저기 어른들 계셔서 안 맞는 줄 알아.”
이때쯤이면 중재에 나서는 아빠가 조용하다. 아빠는 할머니와 엄마 쪽을 슬쩍 보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어릴 적에, 너희 할머니도 이렇게 하늘 보면서 옛날이야기 많이 들려주셨다.”
“친할머니?”
“응. 어릴 적에 잘 들어둘걸. 그럼 지금 너희한테 재미있게 이야기해 줬을 텐데.”
아빠가 조금 울적해 보인다.
“아빠, 할머니는 이야기 잘하셨어요?”
문종원이 눈치 없이 묻는다.
“그럼. 최고의 이야기꾼이셨지. 아빠의 이 섬세한 감성은 다 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돼.”
‘섬세’보다는 허풍에 가까운 감성이다.
“아빠, 할머니 보고 싶어서 그러지? 그렇게 보고 싶으면, 쉬는 날 고향이라도 내려가 봐. 멀지도 않잖아.”
아빠가 말이 없다. 내가 정곡을 찔렀나 보다.
“그게… 안 간 건 아닌데. 할머니가 없어서 그런지 휑하더라. 고향이… 고향이 아니더라고. 명절 때마다 치열하게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말야, 실은 ‘고향’이라 부르는 지역에 가는 게 아니야. ‘부모’라는 품으로 가는 거지. 거기가… 가장 편안하고 그리운 고향이야.”
아빠 말이 어렵다. 하지만 멋있다.
엄마가 편안해 보인다.
외삼촌 차에 짐이 한가득 실렸다. 우리가 실어온 짐보다 실어가는 짐이 더 많다.
“엄마, 우리 집에도 많다니께, 창고라도 털었소.”
“여서는 먹을 사람도 없다, 냅두면 썩어분다. 다희도 갖다주고 그려. 글고 우리 큰 강아지.”
외할머니가 부르는 ‘큰 강아지’는 나다.
“회 좋아하쟤? 허연 상자에 얼음이랑 같이 잔뜩 넣어놨응께 가 묵으라잉. 그리고 또 먹고 자프면 전화혀. 할미가 푸탁 부쳐줄팅께.”
집에 가서도 회를 실컷 먹을 수 있다니 기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코가 시큰하다. 나는 외할머니를 안았다. 종원이도 와서 외할머니를 안았다.
“어여 가. 기차 놓치겄다.”
외삼촌 차에 자리가 있었다면 외할머니는 분명 기차역까지 따라왔을 것이다.
“다희 만나면 안부 전해줘.”
“네, 외숙모. 안녕히 계세요.”
“또 놀러 올게요.”
차창 뒤를 돌아보았다. 외할머니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순돌이 녀석도 할머니 주위를 빙빙 돌며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그 많은 보따리를 어떻게 집까지 들고 왔는지 모르겠다. 우리 네 가족 팔뚝이 모두 욱신거릴 정도다.
엄마는 시골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정리하기 위해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청소해야 했다. 나는 엄마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회부터 해치웠다. 그것까지 냉장고에 넣으려면 엄마가 힘들 테니까. 어차피 엄마는 냉장고 청소를 돕겠다고 해도, 본인이 해야 한다고 나를 막는다.
아마 엄마는 정신없이 냉장고를 청소하고 음식을 정리하면서, 밀려오는 그리움을 악착같이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만약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엄마도 더 이상 그 시골에 안 가겠지.
밤이 왔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빛이 없다. 시골집에서 보던 별이 그립다.
“아빠.”
“응?”
“할아버지랑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다 돌아가셨지? 저기로.”
“저기?”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잘 가셨을까?”
“그럼.”
동물은 집으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본능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워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이 돌아가려는 고향에는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마침내 돌아가는 곳. 저곳에는 누가 있어 기어이 돌아가고야 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