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上

“문혜원, 이제 그만 입 좀 넣지.”
엄마는 꼭 저렇게 말한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입이 피노키오 코처럼 나온다나. 나는 줄곧 입을 앙다물고 있다. 입이 나왔을 리 없다. 어쨌든 기분은… 안 좋다.
‘가만히 집에 있기’가 나의 추석 계획이었다. 요즘은 방학이 너무 짧다. 그마저도 보충수업하러 학교 가고 학원 가면, 방학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다. 민족 대명절의 혜택으로 며칠만이라도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나는 2학기 중간고사를 핑계로 “이번 추석에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겠다”고 선포했다. 언제나 내 편인, 훈남 우리 아빠가 정색하며 말했다.
“혜원아, 고등학생 되니까 시험 부담감이 크지? 그래도 올 추석은 오랜만에 외갓집에 가는 거잖아.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빠 엄마는 혜원이랑 종원이가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나는 짜증 반, 눈물 반을 섞어 나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엄마가 곧바로 나를 제압했다.
“이미 늦었어. 아빠가 벌써 우리 네 식구 기차표 다 예매해 놨거든.”
그렇다. 지금 나는 기차를 타고 있다. 우리 네 식구 아주 오붓하게 마주 앉아서. 하늘의 별 따기라는 명절 기차표를 대체 어떻게 구했단 말인가!
“누나, 입 더 나왔어.”
문종원, 네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구나. 하긴 초딩 5학년이, 자유를 갈구하는 내 마음을 어찌 알랴. 흥, 너와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외갓집은 일명 ‘땅끝 마을’이라는 해남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외삼촌이 우리를 태우러 온다고 했다. 차를 타고 또 한참을 가야 외갓집이 나온다. 차라리 아예 먼 제주도였다면, 휴일마다 자진해서 꼬박꼬박 찾아갔을 것을.
외갓집에는 거의 간 적이 없다. 멀어서였다. 친가에 가느라 갈 기회가 없었는지도. 친할아버지는 오래전 돌아가셨다. 3년 전에는 친할머니도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친가 친척들은 잘 모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산소에 들러 벌초만 한다. 우리 가족은 지난주에 산소에 들렀다. 그리고 오늘, 외갓집에 가는 중이다.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만 계신다.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외갓집 가까이에 따로 산다고 한다. —걸어서 3분 거리라던데, 그게 따로 사는 거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외갓집은 낡은 방, 재래식 화장실, 찬물만 나오는 수돗가, 정체 모를 쾨쾨한 냄새, 깜깜한 밤이 섞여 있다. 아마 천연기념물 ‘시골집’으로 내세워도 손색없을 것이다.
“혜원아, 소풍 가는 것 같지? 아빠는 기차를 젊을 때 타보고 오늘 처음 타봐. 오랜만에 운전도 안 하고 좋다. 우아, 밖에 좀 봐봐.”
아빠가 들떠 있다. 정말 소풍 느낌을 내려는지 엄마는 간식을 바리바리 싸왔다. 종원이는 엄마가 까준 삶은 달걀을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엄마는 나에게도 달걀을 내밀었다. 나는 못 본 척 창밖만 노려봤다.
“그런다고 유리창이 깨져? 아침도 안 먹고,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이왕 가는 거 기분 좋게 가면 좀 좋아? 김밥이랑 달걀, 통 안에 있으니까 알아서 먹어.”
창밖의 세상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파란 하늘을 뚫고 땅 위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얄밉다.

“아야, 짐이 허벌라게 많아분다.”
외삼촌이 소형차에 짐을 실으면서 말했다.
“우리 네 식구 이틀 잘 거랑 엄마 선물 이것저것. 조금밖에 없당께.”
엄마 말대로 그 ‘조금밖에 없는’ 짐에 겨우겨우 끼여 차에 탔다. 엄마는 외삼촌과 대화할수록 말투가 억세지고 있다. 조만간 엄마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덜커덩덜커덩
차가 안 좋은 걸까, 도로가 안 좋은 걸까. 이 상태로 한 시간은 갈 텐데. 확실한 사실은 내 기분이 더 나빠졌다는 거다.
드디어 차가 멈췄다. 멍멍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외할머니가 키운다는, 진돌이인지 순돌이인지 하는 녀석인가 보다.
“워따, 내 새끼 왔냐.”
“어서들 오세요. 오시느라 힘들었죠?”
“엄마! …언니, 잘 지냈어요?”
“장모님, 그간 건강하셨어요? 처남댁도 건강하시고요?”
엄마가 차에서 뛰어나가 외할머니한테 안기고 아빠가 외할머니와 외숙모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동안, 나와 종원이는 무릎에 올린 짐을 내리고 발 사이에 둔 짐을 헤쳐 겨우 차에서 내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외숙모, 안녕하세요.”
종원이는 외할머니와 외숙모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나는 여전히 기분이 안 좋으므로 어색하게 고개만 숙였다.
“아따, 우리 강아지들 겁나게 커브렀네. 기차 타고 온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겠고마. 밥 묵자. 언능 들어와라잉.”
외갓집은 내 기억 속의 오래된 집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내 새끼’ 오면 불편하다고, 낡은 집을 개조했다고 한다.
집 안에는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불고기, 조기, 전복삼계탕, 게다가 회까지! 이거야말로 산해진미다. 추석은 내일인데, 할머니가 헷갈리신 건 아닐까?
“야야, 이 나물 우리 밭에서 딴 거여. 향이 구수하쟤. 문 서방 온다고 닭도 잡았당께. 회도 오늘 막 뜬 거시기고. 난 아까 많이 먹었응께 어여들 먹어.”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더 드세요. 삼촌이랑 외숙모도 드세요.”
“으메, 우리 강아지가 먹자는디 먹어야쓰겄네.”
밉상 문종원은 할머니와 외삼촌, 외숙모까지 챙기며 생글생글 웃는다. 누나한테 그렇게 좀 해봐라.
아침부터 단식 투쟁을 해왔던 나는 배가 고프다. 그러나 자존심상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젓가락을 깨작대며 마지못해 회를 한 점 드는 척했다. 그리고 꾹 다문 입을 열어 회를 우겨 넣었다. 내 속에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회가 무지무지 맛있다.

시골에서의 첫날은 훅 지나갔다. 나는 어제 그냥 곯아떨어졌다. 신경을 너무 곤두세웠던 탓이다. 회를 먹고 무장 해제되는 순간, 내 몸도 그대로 풀렸다. 추석날 아침에는 음식을 한다고 해서 나름대로 일찍 일어났는데 내가 꼴찌다.
외갓집은 추석에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뱃사람답게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한다. 명절날은 식구들끼리 단란히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기만 한다. 식구라고 해봤자, 외삼촌과 우리 식구뿐이지만. 그것도 우리 식구는 거의 오지 못했다.
종원이는 순돌이랑 놀고 있다. 엄마는 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쉼 없이 이야기하며 요리하고 있다. 이제 엄마는 100퍼센트 사투리를 구사한다. 사투리는 은근히 무섭다.
아빠는 외삼촌과 나갔다고 한다. 아빠는 없고, 종원이하고 멍멍이랑 놀기는 유치하고,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에 있자니 어색하다. 마당 너머로 3분 거리에 있다는 외삼촌 집이 보였다. 외삼촌의 금지옥엽 외동딸, 다희 언니랑은 종종 본다. 언니는 서울에서 일한다. 자취하는 언니를 챙겨준다고 엄마는 항상 밑반찬을 많이 만든다.
외삼촌 집 앞을 기웃거렸다.
“어서 와!”
마루에서 요리하던 외숙모가 단번에 나를 봤다. 집에 담이 없어서인가 보다.
“안, 안녕하세요.”
“우리 집은 처음이지? 이리 와 앉아.”
외삼촌 집은 깔끔하고 소박했다.
“외숙모, 왜 혼자 요리하고 계세요? 할머니 집에 안 가세요?”
“어, 좀 있다가. 너희 엄마가 오랜만에 왔잖니. 너 초등학교 때 오고 왔으니까, 5년 만인가? 할머니랑 있을 시간을 줘야지.”
“네. 근데 외숙모는 외숙모 집에 안 가세요? 외숙모도 엄마 보고 싶으실 텐데.”
“어머, 너 몰랐니? 외숙모는 엄마 없어.”
맞다. 외숙모의 엄마는 외숙모를 낳다 돌아가셨다고, 아주 예전에 엄마가 말했다. 외숙모의 아빠는, 잘은 모르겠지만 외숙모와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여하튼 너나 나나, 엄마랑 할머니 사이 방해하지 말고 눈치껏 들어가자. 외숙모 동그랑땡이랑 전 부치는 거 도와주면 더 좋고.”
“아, 네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 달걀 프라이, 만두(냉동 만두를 굽거나 찌기), 김치볶음밥 정도다. 엄마가 항상 해주니까 요리할 일이 별로 없다. 명절 요리는 맛있긴 한데, 손이 정말 많이 간다. 외숙모는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아서 다행이다. 외숙모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만들라는 대로 만들 수 있으니까.
외숙모에게 전화가 왔다. 다희 언니다.
“어. …그래그래. 맛있는 것 좀 먹었니? …괜찮아, 여기가 얼마나 먼데. …표 구하기도 힘들다더라. …나중에 엄마랑 아빠가 올라가던지 할게. …응. …할머니한테는 잘 이야기했어. 할머니도 고생한다고 먼 길 오지 말라 하시더라. …그래. 다 잘 있어. …여기 고모네 와서 시끌벅적해. 너 없어도 괜찮아. …너야말로 쉬는 날 일한다고 힘들겠다. …그래, 고맙다. …응. …건강해라.”
외숙모는 전화를 끊고 다시 전을 부쳤다. 표정이 아까랑은 좀 다르다.
“다희가 일이 바빠서 추석에 못 온다고, 대신 전화한 거야.”
“저번에 언니 봤는데.”
“건강하던?”
“네. 그리고 많이 예뻐졌어요. 아, 원래 예쁘지만요.”
“호호호. 누굴 닮아서 예쁠까.”
외숙모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돈다.
“혜원아.”
“네?”
“혜원이는 부모님이 같이 계실 때 잘해.”
“어? 그 이야기 다희 언니도 했는데.”
“어머, 그래? …걔도 엄마 아빠 보고 싶나 보네.”
외숙모는 다희 언니의 일화를 하나씩 꺼냈다. 어릴 적 착하기만 했던 효녀 다희 이야기로 시작해 공부를 잘해 일찍이 서울로 취직한 수재 다희 이야기로 끝났다. 부쳐야 할 동그랑땡과 전 재료가 더 남아 있었다면 이야기는 더 길었을지 모른다.
동그랑땡과 해물전을 들고 외갓집으로 갔다.
“아따, 맛깔지게 했다.”
“혜원이가 다 했어요, 어머님.”
“문혜원, 어떻게 외숙모 도와줄 생각을 했어? 기특하네.”
엄마가 대청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대청마루에는 이미 음식이 가득했다. 떡갈비, 송편, 잡채, 과일 등등.
“할머니, 할머니!”
종원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순돌이 데리고 산책 나갔는데… 순돌이를 잃어버렸어요!”
종원이는 당장이라도 울 태세다. 그런데 할머니는 껄껄 웃는다.
“개는 원래 그래야. 때 되면 지가 알아서 기들어옹께는 걱정 말그라잉.”
안심하는 종원이 뒤로 외삼촌 차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아빠 품에는 스티로폼 한 상자가 들려 있다. 회다! 아빠와 외삼촌이 아침에 바닷가에 나가 직접 떠왔다고 한다. 아빠는 여전히 들떠 보인다. 나도 들떴다. 내 17년 인생에서 가장 푸짐한 추석을 보낼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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