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보낸 하루

6년 전 일입니다.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다가 5년 만에 잠시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마침 학생들 겨울방학 기간이라 저는 학생 시절로 돌아가 방학을 즐기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는 출근한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윤정아, 아빠랑 섬 구경 가자!”
아빠가 가자고 한 섬은 튤립 축제가 열리는 임자도였습니다. 당시 운수업에 종사하셨던 아빠는 업무 차 임자도에 들어가는 김에 저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실 작정이었습니다.
그날 아빠의 화물 트럭을 처음 보았습니다. 5톤 트럭이었는데 얼마나 높은지 조수석에 오르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앉으니 도로 위의 왕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시간 넘게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큰 트럭이 빨려 들어가듯 차도선(일반 여객과 차량 등을 수송할 수 있는 선박)에 쑥 들어갔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15분 만에 배가 임자도에 도착했고, 먼저 화물을 배달할 창고로 갔습니다.
“짐이 적으니까 얼른 일 마치고 섬 한 바퀴 돌아보자.”
트럭 뒤에는 박스가 실려 있었습니다. 손에 장갑을 끼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자신만만한 모습은 얼마 못 갔습니다. 박스를 하나씩 들고 나르는데, 몇 개 안돼 보이던 박스가 시간이 지나도 줄지를 않았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아빠는 박스를 세 개씩이나 등에 이고 쉼 없이 나르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낑낑대는 저를 보다 못한 아빠가 트럭 안쪽에 실린 짐을 가장자리로 밀어달라고만 했습니다. 들고 나르는 것보다 쉬웠지만 그마저도 나중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했습니다.
언제 시켰는지 짜장면 두 그릇이 왔습니다. 저는 트럭에서 내려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빠는 딸 덕분에 맛있는 것을 먹는다며, 참 맛있게 짜장면을 드셨습니다. 평소 같으면 짜장면이 뭐냐고 투정 부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슥슥 비벼 입에 넣은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 오늘 짐은 적은 거예요?”
“응, 많을 때는 저 트럭 가득 짐을 실으니까.”
“그렇게 많을 때도 아빠가 직접 다 날라요?”
“아니, 짐이 많으면 지게차를 이용하지. 오늘처럼 짐이 어중간하면 일일이 손으로 날라야 해서 더 피곤해. 그런데 요즘은 짐도 적고 일도 없어서, 걱정도 되고 힘도 든다.”
아빠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눈물을 삼키고 저도 따라 일어나 장갑을 꼈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하자 허리, 다리, 팔, 온몸이 다 아팠습니다. 숨도 턱턱 막혔습니다. 제가 없을 때 혼자 더 고생하실 아빠 생각에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어느새 일이 끝나고, 아빠가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하셨습니다.
“아이고, 딸이 도와주러 왔나 봐요. 효녀네.”
“우리 딸이 진짜 착해요. 서울서 대학도 다니고 이제까지 일하다가 고향 내려와서 오늘은 나 돕는다고 왔지요.”
저는 부끄러워서 얼른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빠도 곧 차에 타시더니 섬 드라이브를 시켜주셨습니다. 풀을 뜯는 조랑말, 해안가 튤립공원, 모래사장과 넓은 바다가 보였습니다. 무척 아름다웠지만 머릿속으로 아빠 생각을 하느라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아빠였기에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며 일하시는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회사로 들어가야 하는 아빠는 중간에서 저를 내려주시고, 집까지 못 데려다줘 미안하다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셨습니다.
“오늘 수고비. 조심히 들어가라.”
그날, 아빠에게 받은 그 돈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제 지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빠의 희생을 몸소 깨달은 그날은 제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학생 형제자매님들, 지금 겨울방학이죠? 이번 겨울방학에는 하루 정도 아빠의 일을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여러분들도 아빠와 하루를 보내며 가족을 위한 아빠의 잠잠한 헌신을 가슴으로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 등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겁니다.
아빠의 일을 직접 도와드릴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거라도 괜찮습니다. 하루쯤은 꼭 아빠와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보세요. 그래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재충전하고,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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