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수창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수창이는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탔고, 손도 잘 움직이지 못해서 도우미가 필요했다. 반 아이들은 너도나도 도우미를 자청했다. 도우미는 한 달씩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내가 수창이의 도우미가 되었을 때였다. 그날 점심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나는 평소에 비빔밥을 잘 비비지 못해서 친구들이 비벼주고는 했다. 그런데 수창이가 나에게 비빔밥을 비벼달라고 숟가락을 내미는 것이다. 가뜩이나 비빔밥을 못 비비는 나는, 반찬이 여기저기 흘려진 수창이의 책상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싫어”라고 말해버렸다.
수창이는 화가 나서 말도 안 하고, 내가 휠체어를 밀어주려고 해도 내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도우미를 관뒀다.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똑바로 못하는 수창이가 밉고 싫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복도를 걷다가 저 앞에서 엄마 손에 의지해 힘겹게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수창이였다. 수창이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한 손은 엄마, 다른 한 손은 벽에 붙어 있는 철봉을 의지해서 걷고 있었다. 원래 걷지 못했던 수창이가 걷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멍해졌다. 수창이는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때 알 수 없는 전율이 흐르고 코끝이 찡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초등학교 앨범을 봤다. 다른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사진은 있었지만 수창이와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4학년 때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수창이는 분명 어색해하던 나와 친해지려고 숟가락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수창이를 밀어냈다. 그저 나와 조금 다르고, 조금 더딜 뿐인데 수창이를 싫어하고 피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런 나를 다시 보고 웃어준 수창이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아름답게 보는 마음은 미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합니다.’
머릿속에 어머니 교훈이 스쳤다. 또 코끝이 찡해졌다.
어머니의 자녀답게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바라봐야겠다. 나와 다르다고 싫어하거나 조금 더디다며 밀어내지도 않겠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온전한 사랑의 자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