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학생인 저에게는 쉬운 일이 맡겨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환자의 활력 징후(vital sign) 활력 징후(vital sign): 맥박, 호흡, 체온, 혈압과 같이 생물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징후가 되는 요소. 환자를 진찰할 때 기본적으로 관찰하는 항목이다.
를 측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실습 기간 내내 커다란 혈압계, 그것만 잡고 다닌 것 같습니다.
저의 마지막 환자는 612호실 아주머니였습니다. 처음 612호에 들어갔을 때,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복도와는 달리 커튼이 내려져 있어 어둡고, 공기는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기력 없는 아주머니까지. 그분의 혈압은 100(최고혈압)/60(최저혈압)㎜Hg이었습니다. 보통 정상혈압의 범위는 120/80㎜Hg 미만입니다. 아주머니는 혈압이 나쁘지는 않지만 낮은 편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머니의 혈압은 뚝뚝 떨어져 90/60㎜Hg이 평균 수치가 되었고, 그 방에만 들어가면 저도 축 처졌습니다. 아무튼 우울한 612호였습니다.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노크를 하고 병실 문을 열었습니다.
“뛰지 말고 앉아 있어라, 좀!”
제가 말을 걸면, 겨우 입 밖으로 새어나오듯 작았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병실을 넘어 복도까지 튀어나왔습니다. 환하게 켜진 형광등,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병실 안, 또 어린 남매들의 땀 냄새. 깜짝 놀라서 헉 소리가 났습니다.
“이쪽으로 와서 재주세요.”
아주머니의 칙칙했던 얼굴이 몰라보게 화사해져 있었습니다.
혈압은 120/90㎜Hg. 아주머니의 혈압이 정상 범위로 올라갔습니다. 아주머니의 입꼬리도 올라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존재가 아주머니에게 활력이 되고, 힐링(healing∙치유)이 되었나 봅니다. 병실이 참 밝고 따뜻했습니다. 아직도 그날 아주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저는 하늘 어머니께 어떤 존재일까요. 어머니의 마음을 환히 빛나게 해드리는 그 무언가가 과연 ‘나’일까 생각해봅니다. 가끔은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하지만 꼭 어머니를 활짝 웃게 해드리는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활력소가 되리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