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비가 오려나 봐요. 이렇게 무더운 걸 보면요.”
그때 멀리서 우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옵니다.
“벌써 비구름이 몰려오나 보오. 마저 집수리를 할 테니 어서 가서 애들을 불러와요.”
엄마가 부랴부랴 수초 사이를 헤치며 헤엄칩니다.
“얘들아, 집으로 오너라. 얘들아!”
파닥파닥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쇠물닭 세 마리가 갈대 위로 날아왔습니다. 쇠물이의 형들입니다. 갈대숲을 헤치고 누나도 나타납니다. 입에 소금쟁이 한 마리를 물고 있습니다.
“쇠물이는 어디 있니?”
갑자기 누나 얼굴이 울상이 됩니다. 입에서 소금쟁이가 물 위로 떨어지더니 잽싸게 도망칩니다.
“할머니 댁에 가자고 해서 엄마 허락받고 올 동안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는데….”
누나가 덜덜 떨면서 말을 더듬습니다.
“할머니 댁에? 쇠물아!”
엄마가 날개를 퍼덕이며 호수 위로 날아오릅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혼자 논둑길을 달려가며 쇠물이는 신이 났습니다.
‘할머니가 나 혼자 찾아온 걸 보면 무척 대견해 하실 거야.’
“어, 어, 아야!”
논두렁에서 발이 미끄러진 쇠물이가 첨벙 하고 길 옆 도랑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어이구, 물고기가 다 도망갔네. 어떤 놈이 내 저녁을 망친 게야?”
왜가리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쇠물이를 바라봅니다. 쇠물이의 다리가 덜덜 떨립니다.
“으응, 꼬마 쇠물닭이구나? 고놈 까만 털이 보송한 게 참 귀엽게 생겼다!”
왜가리가 한쪽 눈을 살짝 감으며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꼬마야, 넌 왜 혼자 다니니? 가만, 너 그러고 보니 외톨인가 보구나.”
“아, 아니에요. 형도 있고 누나도 있고, 엄마도 있고, 아빠와 할머니도 있어요.”
“음, 그래? 그래도 친구는 없네? 이 아저씨가 친구 돼줘야겠는걸. 어떠냐?”
왜가리가 부리로 쇠물이의 몸을 툭툭 쳤습니다.
‘엄마가 아무나 친구하면 안 된다 했는데…. 하긴 엄마는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뭐.’
쇠물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그래요, 아저씨! 우리 친구 해요.”
“그럼, 오늘 우리 집에 한번 가 볼래? 높은 나무 위에 있어 온 세상이 다 보인단다.”
“야호! 생각만 해도 신나는데요.”
순간, 쇠물이를 부르는 엄마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엄마다! 이키. 아저씨! 저 좀 숨겨주세요.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요.”
“흐흐, 그러자꾸나.”
왜가리가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한쪽 다리를 들어 쇠물이를 덥썩 움켜쥡니다.
“아야! 아저씨, 아파요. 살살요.”
“고 녀석, 정말 순진하구나.”
왜가리는 눈을 번쩍이며 쇠물이를 쥔 발가락에 더욱 힘을 줍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우린 친구잖아요.”
“친구? 그렇지. 새끼 쇠물닭은 우리 왜가리들에게 아주 좋은 먹이지. 켈켈켈!”
“왜, 왜가리? 엄마아! 엄마!”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다.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왜가리가 긴 목을 구부려 쇠물이를 노려보고는 퍼덕퍼덕 날개를 칩니다.
“엄마! 엄마!”
“시끄러워! 입 다물지 못해! 흐헉!”
갑자기 왜가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논도랑에 푹 하고 고꾸라집니다. 그 바람에 쇠물이를 쥔 발가락에 힘이 풀렸습니다. 쇠물이가 데굴데굴 굴러 저만치 떨어집니다.
“쇠물아, 어서 도망가!”
왜가리 뒤에 엄마가 서 있습니다.
왜가리가 목을 길게 빼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엄마 앞으로 걸어옵니다. 엄마가 부리를 앙다물고 왜가리를 노려보다 날개를 치며 날아오릅니다. 왜가리가 두 발을 치켜들고 엄마의 날개를 움켜쥡니다. 엄마가 논도랑 위로 떨어집니다. 엄마의 작은 몸이 커다란 왜가리에게 짓눌립니다. 엄마가 위험합니다.
“안 돼! 우리 엄마를 놔줘!”
쇠물이가 왜가리의 발등을 부리로 콕 찍었습니다.
“저리 가지 못해. 에잇! 이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 귀찮게시리.”
왜가리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쇠물이를 발로 차냅니다. 쇠물이가 저만치 내던져졌습니다.
“쇠물아!”
왜가리 발밑에서 빠져나온 엄마가 쇠물이에게 달려옵니다. 날개로 쇠물이를 꼭 감쌉니다. 엄마의 한쪽 날개가 뒤로 꺾여 있습니다. 왜가리가 부리를 곧추세우며 성큼 다가옵니다. 엄마가 쇠물이를 등에 업고 도랑 위를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왜가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쫓아옵니다. 왜가리의 두 눈이 무섭게 번뜩이고 있습니다. 쇠물이는 숨이 막혀 기절할 것 같습니다. 왜가리의 부리가 엄마의 꽁지에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왜가리가 옆으로 픽 하고 쓰러집니다.
언제 왔는지 아빠가 왜가리 뒤에 서 있습니다. 아빠 옆에서 형들이 날개를 퍼덕이더니 용감하게 왜가리를 향해 달려듭니다. 왜가리가 날개를 솟구쳐 하늘로 날아오르자 아빠와 형들도 왜가리를 쫓아 날아오릅니다.
“쇠물아! 쇠물아! 괜찮니?”
엄마가 쇠물이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어, 엄마!”
“많이 놀랐지? 이젠 괜찮다. 괜찮아.”
엄마가 쇠물이를 꼭 안아줍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쇠물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니야, 엄마가 더 미안해. 옆에서 지켜주지도 못하고. 쇠물아, 오늘 많이 힘들었지?”
“아니에요. 엄마, 앞으로는 말씀 잘 들을게요. 죄송해요.”
“우리 쇠물이가 금세 철이 들었구나?”
아빠와 형들이 쇠물이의 이름을 부르며 날아오고 있습니다. 왜가리가 멀리 도망갔나 봅니다. 저쪽 논둑길 위에서 누군가 뒤뚱뒤뚱 달려옵니다. 누나입니다. 쇠물이와 엄마가 동시에 한쪽 날개를 들어 흔들어 보이다 마주 보고 웃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