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푸에푸, 켁켁.”
수풀 속에서 꾸벅꾸벅 낮잠을 자던 해오라기 한 쌍이 재채기 소리에 고개를 번쩍 치켜듭니다. 온몸에 밤송이처럼 까만 털이 덮인 아기 쇠물닭이 부르르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냅니다.
“쇠물아! 숨을 깊게 들이마셔. 자, 엄마 따라 이렇게 하는 거야.”
엄마가 빨간 부리를 쑥 내밀며 갈대 줄기 사이에서 헤엄쳐 나옵니다.
“물속에서는 잠깐 숨을 멈춰야 해.”
엄마가 수초 위에 서더니 몸을 좌우로 파르르 흔듭니다. 검푸른빛 깃털에서 물이 털려 나가며 햇살에 반짝입니다. 엄마의 모습을 보던 쇠물이가 고개를 숙여 자기 모습을 물에 비춰 봅니다. 엄마와는 다르게 까만 솜털만 보송합니다. 머리에 빨간 속살도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마치 까만 병아리 같습니다.
“쇠물아, 저쪽으로 가서 누나랑 잠수 연습 좀 더 하렴.”
“또요?”
쇠물이가 뽀로통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잠수를 못해 물을 먹은 게 아니라 소금쟁이를 살금살금 뒤쫓다 수초에 발이 걸려 넘어졌거든요. 엄마가 대답 대신 날개를 들어 갈대 줄기 사이를 뱅글뱅글 헤엄치고 있는 누나를 가리킵니다.
쇠물닭은 가을이 되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야 하는 여름 철새입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새끼들은 먹이를 잡는 법,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치, 이제 나도 잠수 잘하는데….’
쇠물이가 개구리밥을 발로 톡톡 건드리며 딴청을 피웁니다.
“우리 쇠물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울까? 어서 누나 옆으로 가렴.”
“엄마는 맨날 누나만 칭찬해….”
“원, 녀석두. 놀고 싶어서 별 심통을 다 부리는구나. 그래, 알았다. 누나랑 잠시 놀거라.”
쇠물이는 야호 하고 날개를 파닥이며 누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누나는 벌써 엄마에게 어른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엄마는 바쁠 때면 누나에게 쇠물이의 연습을 대신 맡기십니다. 쇠물이에게는 누나 외에도 장난꾸러기 형 셋이 있는데, 형들은 요즘 누나 옆에 오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몰려다닙니다. 얼마 전, 장난치다 누나의 날개를 조금 다치게 해 미안한가 봅니다.

“쇠물아, 이쪽으로 와. 덥지? 누나가 소금쟁이 잡아줄게.”
“나도 소금쟁이쯤은 잡을 수 있다고. 근데, 누나! 난 엄마가 이해가 안돼, 왜 맨날 연습만 하라는 거야? 해오라기 아줌마네도 가을에 남쪽으로 간다는데, 날마다 낮잠만 자잖아.”
“네가 몰라서 그래, 해오라기 가족은 밤에 활동하는 새라서 우리가 잘 때 움직여. 그리고 엄마가 연습하라고 하는 건 다 왜가리 때문이야.”
“왜가리?”
“쇠물이 너 어젯밤에 꾸벅꾸벅 졸더니 아빠 엄마 말씀 하나도 안 들었구나? 강 아래에 왜가리가 돌아다닌대. 할머니도 왜가리를 피해 저쪽 논 옆에 있는 연못으로 이사가셨다고 했어.”
쇠물이는 누나가 날개로 가리킨 곳을 쳐다봅니다. 하지만 까치발로 총총 뛰어도 초록빛 벼들만 바람에 흔들릴 뿐입니다.
“왜가리가 도대체 뭐야? 누나도 본 적 없지? 왜가리가 있기는 한 거야?”
“엄마가 그러셨잖아. 지난봄 왜가리가 우리 둥지에 왔었다고. 그때 아빠 엄마가 우릴 구하려고 왜가리와 싸우다 아빠가 다리까지 다치고….”
“에이, 재미없어. 누나, 우리 할머니 댁에 놀러 가자. 응?”
쇠물이가 폴짝 뛰어 물속으로 다이빙을 합니다.
“쇠물아, 가면 안 돼! 아직 길도 모르잖아.”
“그럼, 누나가 같이 가줄 거야?”
쇠물이가 물속에서 빼꼼 머리를 내밉니다.
“엄마한테 먼저 허락 맡아야지.”
“누나는 뭘 걱정해? 엄마는 누나 말이면 다 들어주시잖아.”
“알았어. 누나가 물어볼게, 너 여기 꼼짝 말고 있어야 돼. 알았지?”
“야호! 신난다.”
누나가 수초 위로 올라서더니 둥지를 향해 뛰어갑니다. 쇠물이가 갑자기 킥킥대며 웃습니다. 누나가 뛸 때마다 하얀 꽁지가 뒤뚱뒤뚱 좌우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누나가 뛰는 모습은 형제들 사이에서도 항상 웃음거리입니다.
“쇠물이 너, 지금 웃었어?”
누나가 쇠물이를 쳐다보며 눈을 흘깁니다.
“누나, 왜 그래? 그냥 장난친 건데. 응?”
누나가 팽 하고 토라진 얼굴로 수초 위를 뛰어갑니다.

‘누나는 다 좋은데, 꼭 외모 이야기만 나오면 저러더라.’
쇠물이가 한숨을 푸 하고 내쉬었습니다.
“쇠물아! 왜 혼자 있니?”
어느 틈에 오셨는지 아빠가 쇠물이 뒤에서 말을 건네십니다. 쇠물이의 눈이 반가움에 반짝입니다.
“아빠!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날갯짓에, 잠수 연습에 정말 힘들었어요.”
쇠물이가 부리를 쑥 내밀자 아빠도 부리를 내밀어 쇠물이의 부리에 톡톡 갖다대십니다.
“요, 꾀돌이 녀석. 놀고 싶은 게로구나?”
“엄마가 계속 같은 것만 하라니까 지겨워요. 아빠, 저….”
쇠물이가 두 날개를 파닥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 갑자기 입을 꾹 다뭅니다. 아빠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거든요. 갈대 줄기 사이로 형들이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가만, 저기 네 형들이 아니냐? 벌써 날아오르다니! 쇠물아, 어여 너도 가서 형들한테 비행 연습 좀 배우거라.”
그때 갈대숲이 바람에 스르르 소리를 냅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비 오기 전에 갈댓잎을 모아 둥지를 높여야 하는데, 쇠물이 너는 형들 옆으로 가렴.”
아빠가 수초 위에서 갈댓잎 하나를 입에 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갑니다. 혼자 남겨진 쇠물이는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듭니다. 쇠물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엄마는 누나만 예뻐하고, 아빠도 형들만 좋아해. 아무도 내 얘기는 들어주지 않아. 그래, 할머니한테나 가야겠다. 할머니는 항상 내가 제일이라고 하시니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