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교 석식 대신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오신 할머니와 식사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적적하다며 저녁을 자주 거르신다고요.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가끔씩 뵙던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몹시 긴장되었습니다. 걱정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살짝만 꺼내도 할머니는 대화를 술술 이어가셨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날이 늘수록 대화 수도 훌쩍 늘어 할머니와 가까워졌습니다.
하루는 아빠가 할머니를 뵙고 와서 제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저와 저녁 식사 하는 날은, 아침부터 메뉴를 고민하신다는 겁니다. 혹여 음식이 부족할까 봐 여러 종류의 반찬과 후식 과일까지 넉넉히 준비해 놓으시고요.
할머니가 밥을 너무 많이 준다고 투정 부리고, 할머니보다는 친구들과 밥을 먹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할머니께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제게 일등 밥상은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