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서로 도우며 사는 것

엄마는 산 아래 외딴집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집도 남의 집이고, 농사도 남의 땅에 짓는 형편이라 할머니(엄마의 엄마)는 100일이 막 지난 엄마를 할아버지(엄마의 아빠)와 증조할머니(엄마의 할머니)께 맡기고 도시로 일을 나가셨다. 엄마는 비싼 분유 대신 미음을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지금도 몸이 왜소하고 자주 아프시다. 엄마가 네 살 때에야 할머니가 모은 돈과, 할아버지가 농사지어 번 돈으로 도시에 전셋집을 얻어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엄마가 국민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엄마와 큰이모(엄마의 언니), 작은이모(엄마의 여동생)의 머리를 삭 땋아주시고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아프지 않는 한 꼭 먹어야 했다. 엄마는 아침밥을 다 먹으면 할머니와 함께 도시락을 싸고, 30분씩 걸어 학교에 갔다.
그때는 집집에 아이들이 많았다. 한 반에 학생이 70명인데도 아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2부제 수업을 했다. 어린 시절, 활발했던 엄마는 운동회 날 치어리더도 하고, 애향단에서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단장이 되기도 했다(애향단은 마을 청소·미화를 맡은 국민학생 단체였다고 한다).
하교 후 심심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부업 하는 곳에 갔다. 아주머니들은 사탕을 포장했는데 손이 빠른 엄마에게도 일을 시켰다. 사탕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용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엄마는 순수한 마음에 열심히 포장했다.

2학년인가 3학년 때, 엄마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할아버지는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 할머니가 병간호하며 집에 오갈 상황이 안 되자 아예 병원에 살림살이를 놓고 온 가족이 지냈다. 엄마는 두 달 동안 병원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 다녔다. 할아버지는 퇴원하시고도 후유증으로 오른팔이 불편하셨고, 이후로 할머니가 가장이 되어 일하러 다니셨다.
엄마가 5학년 때, 삼촌(엄마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할머니는 몸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출근하셨다. 할아버지가 삼촌을 돌보시고, 엄마가 학교를 마치고 와서 삼촌을 보살피고 집안일을 했다.
100일도 안 된 삼촌이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었다. 일 나간 할머니 대신 엄마와 큰이모가, 삼촌과 여섯 살 된 작은이모를 데리고 병원까지 한 시간을 걸어갔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삼촌을 업을 수 없어 큰이모와 엄마가 번갈아 안으며 분유, 기저귀가 든 가방까지 챙겼다. 무사히 예방접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무심천 둑길에 쪼르르 앉아 자매들끼리 “얘(삼촌)는 애기인데 언제 클까?” 하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우리는 항상 오늘처럼 서로 도우며 살자”로 마무리되었다.

엄마는 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꿈을 미뤘다. 네 살 위의 큰이모는 너무 허약했고, 작은이모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엄마가 빨리 돈을 벌어 할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였다. 담임 선생님의 만류에도 엄마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일찍 취업해서 집에 생활비를 보탰다. 큰이모가 결혼하고 작은이모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엄마는 대학에 들어가려 했다. 그때 IMF 외환 위기가 일어났다. 할머니가 다니시던 과자 공장이 대규모 구조 조정을 해 할머니가 직장을 잃으셨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동생들을 위해 계속 일해달라는 어려운 부탁을 하실 수밖에 없었고, 엄마는 끝내 꿈을 접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만 아니라 외갓집에서도 엄마 같다. 집안에 일이 생기면 도맡아 해결하고, 할머니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단 엄마를 부르신다. 할머니는 옛날부터 “너희는 결혼해도 떨어져 살지 마라. 가까이서 자주 보고 도우며 사는 것이 엄마 소원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직장 일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삼촌을 제외한 세 자매는 매주 얼굴을 볼 만큼 가깝게 살고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이모부 들, 삼촌, 사촌들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가족의 연이 하늘 가족으로 이어져 좋은 것은 나누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우며 우애 있게 지낸다. 할머니는 서로 돕고 사는 가족들에게 항상 고마워하신다. 엄마는 “형제자매가 정겹게 살아가는 것을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처럼 영혼의 형제자매와도 연합하고 서로 도와 하늘 부모님께 기쁨이 되어야지”라고 말하고는 한다.


엄마는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주신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시간이 없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잘 듣지 않았다. 오늘 ‘이다희의 엄마’가 아닌 ‘인간 최선예’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고 뭉클했다.
가족은 함께해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나도 우리 가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도우며 끈끈한 가족의 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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