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이 되었다. 시험도 끝나고 날씨도 좋아 기분이 들뜬 때, 친구가 안내장 한 장을 가지고 왔다.
-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를 위한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채은아, 여기 가자! 봉사 시간 6시간 준대. 너 아직 봉사 시간 안 채웠지?”
안내장을 읽어보니 각종 먹거리와 전통놀이 체험관을 준비한 어린이날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봉사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재밌어 보였다.
“완전 좋다. 10시까지 가면 되지?”
친구와 나는 봉사 신청을 하고, 그날 날씨 검색을 시작으로 사람은 많이 올지, 어떤 전통놀이가 있을지 열심히 추측했다. 우리도 슬쩍 전통놀이를 해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상상하다가 자그마한 몸으로 투호나 널뛰기를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울지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행사가 끝난 뒤 떡볶이를 먹자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워놓았다.
봉사 당일, 아침부터 핑크빛 환상을 와장창 깨뜨리는 비가 왔다. 그래, 원래 놀러 가는 날에는 꼭 비가 온다. 하지만 우리는 봉사하러 가는데 비가 웬 말인가! 부슬부슬 오던 이슬비는 불안을 알아챈 듯 서서히 그쳤다. 우리는 안도하며 봉사 장소로 향했다. 청소년 봉사자들이 속속 모였고 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봉사자분들, 이리 오세요!”
봉사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누가 어떤 부스를 맡을지 결정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투호, 널뛰기, 제기차기, 땅따먹기 같은 전통놀이 부스, 페이스페인팅과 네일아트 등 뷰티 관련 부스 그리고 슬러시, 팝콘, 솜사탕을 제공하는 먹거리 부스가 있었다. 페이스페인팅과 네일아트 부스는 관련 경험이 있는 학생이 배정받았다. 미술하고는 영 인연이 없는 친구와 나는 부스를 배정해주는 담당자의 입술만 바라봤다. 무조건, 이왕이면 재밌는 부스로 배정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학생 두 명은 솜사탕 부스로 가세요.”
“와아! 네!”
놀이동산에서 봤던 몽실몽실하고 달콤한 파스텔톤의 솜사탕을 떠올리고 마음이 설렜다. 솜사탕 부스에는 두 개의 솜사탕 기계와, 그 옆에 나무젓가락과 분홍색, 하늘색, 초록색의 알록달록한 설탕이 놓여 있었다. 열의를 불태워 솜사탕 만드는 법을 배우고, 귀여운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아장아장 걷는 앙증맞은 아기부터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아보겠다는 눈빛의 개구쟁이까지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행사장에 왔다. 바동거리며 전통놀이 체험을 마친 아이들은 먹거리 부스로 눈길을 돌렸다. 눈을 반짝이며 솜사탕 기계 앞에 선 아이들을 위해 솜사탕을 만들었다. 기계 중심에 설탕을 붓고, 기계 가장자리에 생기는 솜사탕 가닥을 나무젓가락으로 모아 아이들 손에 건넸다. 환하게 웃으며 맛있게 먹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 시간은 분명 그랬다.
아침에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듯 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쨍쨍하게 빛을 쏘아댔다. 날이 더워지자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전통놀이 부스보다 먹거리 부스로 몰렸다. 공휴일에 가족과 단란하게 행사에 참여코자 하는 예쁜 마음을 가진 가족이 얼마나 많던지! 먹거리 부스 앞에는 줄이 구불구불 길게 이어졌다.
솜사탕을 만드는 과정은 그 색과 맛처럼 절대, 절대 달콤하지 않았다. 기계에 설탕을 넣으면 설탕이 손에 튀어 따가웠고, 솜사탕 만들기는 처음이라 마음처럼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이거 다른 사람이 가져간 솜사탕보다 작은데, 다시 만들어줘요.”
“빨리 주세요!”
설상가상 솜사탕 기계 두 개 중 하나가 고장 나는 바람에 만드는 속도가 더더욱 느려졌다. 더위와 긴 줄에 지친 부모님들은 앳된 얼굴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나 역시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옆쪽 팝콘 부스는 옥수수가 떨어져 진작 문을 닫았는데 설탕은 왜 떨어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다리와 팔이 저려왔다.
설탕 때문에 손가락이 끈적해지고 설탕의 단내가 역겨워질 즈음, 6시간이 끝났다. 손에 튀었던 설탕은 기어이 붉은 반점을 남겼다. ‘힘들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쳐 떡볶이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는 빨리 씻고 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이구, 표정 봐. 많이 힘들었어?”
하지만 엄마 얼굴을 본 순간, 이야기 봇물을 터뜨렸다. 6시간 동안 10분도 앉아 있지 못했다, 이건 봉사가 아니라 일이다, 사람들이 너무 불친절했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더라, 팔다리 뭉친 거 보이느냐, 대한민국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 엄마는 인생을 배우고 왔다며 웃었다. 한참을 하소연하다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들었다. 엄마가 조물조물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걸 느끼면서.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일을 시작했다. 나를 책임져 키워야 했다. 딸이 밖에서 기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부족함 없이 챙겨줬고, 언제나 나에게 친절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려주지는 못할망정 가뭄에 콩 나듯 안마를 해주면서 있는 대로 생색내는 딸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엄마에게 든든한 딸이 아니었다. 엄마의 기쁨보다 나의 편안함이 중요한 딸이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으로 있고 싶지 않다. 엄마에게 힘이 되어주는 딸이 되고 싶다. 엄마를 미소 짓게 하는 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