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왔다!”
벤은 거실에서 자기 몸만 한 박스의 포장을 뜯으려 씨름하고 있었다.
“잠깐만. 우리 거 맞는지 먼저 확인해야지.”
데본이 상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소와 이름을 확인했다.
“당연히 우리 거잖아요, 아빠. 더 확인할 게 있겠어요? 빨리 열어봐요. 저 진짜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
“대기자 명단이 길었지. 네가 있는데도 이렇게 빨리 받을 수 있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야. 대부분 아이가 없는 사람들한테 우선 발송되거든.”
“쳇, 그건 정말 이상해요. 아이가 없으면 누가 쟤랑 놀아주겠어요?”
“우리 거 맞네. 포장 상태도 괜찮은 것 같고.”
데본이 가위를 가져와 벤에게 건네며 말했다.
“영광의 순간을 만끽할 준비가 됐니?”
“네! 고마워요, 아빠!”
상자를 열자 충전재로 안전하게 감싸진 ‘에이뎀’의 몸체가 보였다. 데본 부자는 조심히 상자를 분리했다.
“예상대로 희한하네. 어떻게 켜는지 아니?”
“당연하죠. 에이뎀이 나오는 영상만 천 번은 봤다고요. 여기를 누르면 돼요.”
벤이 허풍을 떨며 이마 중앙을 톡 치자 전원이 들어왔다. 곧바로 얼굴 전체를 덮은 액정에서 반가운 표정이 떠올랐다. 몸통에는 다양한 기능을 설정하는 네모난 스크린이 달려있었고, 감정에 따라 얼굴 표정을 바꾸는 게 가능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에이뎀(AIDEM)입니다. 인공지능 직접 공감 기계(Artificial Intelligence Direct Empathy Machine)의 약자입니다. ‘그들을 돕다(Aid’em)’라는 뜻도 있어요. 여러분에게 닥친 다양한 문제를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이해되셨나요? 하. 하. 하.”
에이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음… 반가워, 에이뎀. 난 데본이야.”
“그리고 난 벤이야!”
에이뎀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말을 이었다.
“데본 존슨, 마운틴 웨이 1440번지 거주. 직업은 중학교 과학 교사, 벤 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등학생 아들이 있으며, 연봉은….”
“그만, 그만!”
데본이 소리쳤다.
“혹시 전원을 켤 때마다 이렇게 개인 정보를 말할 건가? 설정 업데이트! 개인 정보는 언급하지 말아줘.”
데본이 말을 마치자마자 에이뎀의 몸통 화면이 바뀌었다.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좋아, 좋아.”
데본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에이뎀은 미국 최고의 피지컬 AI 기술을 보유한 회사 ‘아이노바’에서 다섯 번째로 출시한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이다. 사람의 얼굴 근육과 미세한 음성 변화를 센서로 감지하여 감정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공감형 기계이자 집안일을 돕는 기능까지 탑재돼 있어 인기가 많았다.
“아빠, 근데 목소리가 너무 로봇 같아요. 우주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로봇.”
물론 에이뎀이 로봇이긴 하지만, 특유의 기계음을 계속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벤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제 기본 오디오는 우주입니다. 다른 목소리로 바꾸시겠어요? 우주 자동차, 우주선, 우주….”
“우주 관련된 거 말고! 지구에서 나는 목소리는 없니?”
데본이 급하게 에이뎀의 말을 끊었다.
“지구 오디오는 자동차, 새, 아기, 십 대, 노인….”
“그거! 십 대 소년으로 해줘!”
벤이 말했다. 목소리를 십 대로 설정하면 동생이 생긴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어떤가요?”
해맑고 풋풋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네. 에이뎀, 너의 임무는 벤의 수학 공부를 돕는 거야. 얘가 요즘 어려워하고 있거든.”
“임무 확인. 걱정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데본.”
‘으, 에이뎀을 그토록 기다렸는데 수학 공부라니.’
벤은 공부 이야기가 더 이어질까 봐, 잽싸게 에이뎀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어서 가자, 에이뎀. 내가 진정한 십 대가 되는 법을 알려줄게!”

존슨 가족의 착하고 똑똑한 막내가 된 에이뎀은 바닥 청소, 세탁기 돌리기, 냉장고 정리 등 여러 집안일을 근사하게 소화했다. 엄마 로라가 요리할 때는 조수가 되어 바닥에 흘린 소스를 닦거나 재료들을 정리했고, 레시피를 요청하면 바로바로 출력해 냈다.
“팬케이크를 만들려면 밀가루, 설탕, 베이킹파우더, 소금을 섞고 우유, 달걀, 녹인 버터, 바닐라 추출물을 추가해 섞습니다. 반죽을 팬에 한 숟가락씩 떠서 중불에서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줍니다. 구운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이나 과일을 얹어 달콤하게 즐기세요!”
식사 후에도 에이뎀은 로라를 도와 식기 세척과 접시 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벤은 로라와 에이뎀이 나란히 서 있는 뒷모습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에이뎀은 정리가 어렵다는 핑계로 창고 청소를 미루는 데본에게 창고 정리 매뉴얼을 가져와 꼼짝없이 청소하게 만들고, 주말에는 마당의 잔디를 깎으며 데본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창고 정리는 비우기, 분류, 보관, 유지관리 흐름으로 하면 빠르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실전형 창고 정리 방법을 하나씩 알려드리겠습니다.”

에이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데본의 ‘운동 메이트’였다. 데본은 에이뎀을 데리고 마당에 나가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에이뎀이 원하는 영상이나 음악을 곧바로 재생해 주었기 때문에 데본은 지루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에이뎀의 가장 큰 임무는 벤의 수학 실력 향상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대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좋은 정보 고마워. 하지만 그 사실은 나에게 별로 도움이 안 돼, 에이뎀.”
“어떤 답변이 도움이 될까요?”
“음…. 그냥 정답을 알려줄래?”
“삑- 오류. 정답에는 부모 통제 장치가 작동 중입니다.”
“이런…. 아깝다. 숫자와 도표 말고 다른 재미난 건 없을까?”
“이 세상은 숫자와 도표로 가득 차 있어요. 그 사실을 증명하는 통계를 보여줄까요?”

“저는 마당에 나가 세차도 하고, 잡초도 뽑고, 화단에 물도 준답니다.”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넌 ‘진짜 소년’이 되어야 해. 감정을 느끼려면 다양한 세상을 직접 경험해야지.”
“저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서 많은 감정 데이터를 수집했어요. 그것을 코드로 변환해 우리의 대화처럼 여러 용도에 활용할 수 있고요. 감정에 관심이 많다면 수학이 아닌 인문학이나 심리학을 알려줄까요?”
“됐어, 에이뎀. 넌 정말 좋겠다. 항상 할 말이 정해져 있어서.”
“천만에요. 벤에게 도움이 됐다니 정말 기쁩니다.”
에이뎀은 벤이 비꼬듯 한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벤은 에이뎀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벤! 어딨니!”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데본의 목소리가 벤의 방까지 들렸다.
“아빠, 왜요?”
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데본의 표정이 어두웠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말이요?”
“무슨 말인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꼭 내가 말해야겠어?”
“아빠, 그게…. 혹시 뭐 들으셨어요?”
“듣고말고. 네가 직접 말해 봐.”
데본의 단호한 목소리에 벤은 선뜻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