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뎀 Ⅱ

“아빠, 일단 화내지 말고….”

어젯밤, 벤이 친구와 사고 친 걸 데본이 알아버린 것이다.

“남의 차를 엉망으로 해놨더라!”

“그냥 장난이었어요. 표면이 코팅된 캐러멜과 탄산음료를 섞으면 분수 현상이 일어난다기에 실험해 본 거였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음료수가 크게 솟구쳐 사방으로 튀었는데 자동차에도 묻은 줄 몰랐어요. 진짜로요….”

“그 장난 때문에 내가 얼마나 사과를 하고 왔는지 아니? 차 표면이 부식되어서 수리해 주어야 한다고. 벤, 에이뎀처럼 얌전히 제 할 일만 하면 안 되겠니?”

데본이 자리를 떠나려다 다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수학 공부 하면서 자꾸 에이뎀한테 정답 물어보지 마라. 정답 말하는 기능 막아놨다.”

데본이 떠나자 벤은 방으로 들어오려는 에이뎀을 못 본 체하고 방문을 닫았다.

‘공부? 나 혼자 하면 되지. 에이뎀 도움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로라와 데본이 저녁을 차리는 중이었다. 벤은 나가서 준비를 도우려다 멈칫했다.

‘에이뎀처럼 제 할 일만 하면 안 되겠니?’

벤의 머릿속에서 데본의 말이 맴돌았다.

‘쳇, 에이뎀이 있으니 도울 필요 없겠지.’

“에이뎀, 여기 좀 와줄래?”

아니나 다를까 로라가 에이뎀을 불렀다. 에이뎀은 미끄러지듯 이동해 로라 곁으로 갔다.

“테이블 매트를 가져왔는데, 식탁 위에 놓을까요?”

“그래 부탁할게. 근데….”

“다른 것도 해드릴까요?”

“벤은 어디에 있니? 벤과 집안일을 함께했니?”

“아니요, 벤은 지금 방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전 벤의 도움 없이도 괜찮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벤보다 집안일을 훨씬 잘하니까요.”

“벤? 방에 있니?”

로라가 불렀지만 벤은 대답하지 않았다.

“벤, 밥 먹어야지!”

데본이 한 번 더 불렀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벤을 계속 데리고 있나요?”

그 말에 깜짝 놀란 벤은 방문에 귀를 바짝 댔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그게 무슨 뜻이니?”

데본이 물었다.

“꽤 논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벤은 청소, 요리, 심부름을 잘하지 못해요. 운전도 못 하고요. 제가 관찰한 바로는, 집에서 데본이나 로라의 일을 적극 도우려 하지 않아요. 학교 성적도 우수하지 않아 미래 전망도 밝지 않고요. 게다가 가끔 예상치 못한 일로 데본과 로라를 곤란하게 만들죠.”

벤은 어이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에이뎀에게 따지려 했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이뎀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심각한 분위기를 깬 건 로라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그게 바로 아이들이란다. 실수하고, 말썽도 피우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심통을 부리지.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가 웃거나 사랑을 표현해 주면 그런 건 전부 잊게 돼.

벤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 내 부탁이 뭐였는지 아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였어. 별다른 조건이 있는 게 아니었단다. 집안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수학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런 조건이 달린 말이 아니었어.”

이어서 데본이 말했다.

“맞아. 그저 우리 곁에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마울 뿐이지.”

데본의 말에 벤은 울컥했다. 벤 역시 은연중에 자신이 부모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고뭉치라고 생각해 왔다. 에이뎀이 와서 데본과 로라의 일을 척척 돕고 난 뒤부터는 더더욱.

“저는 복잡한 계산을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보다 수백 배 빠르게 할 수 있어요. 어떤 언어로, 어떤 질문을 받아도 즉시 대답할 수 있고요. 하지만 단 하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는 단어가 있어요.”

“그게 뭔데?”

“사랑입니다. 보통 부모는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자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혹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효율성과 자원 배분의 관점에서 낭비와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자원을 쏟았는데, 자녀가 부적절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할 경우, 부모의 자원이 낭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두고 사랑을 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입니다. 자녀가 성취를 이뤄내거나 올바로 행동할 때만 사랑을 제공하는 거죠. 그러면 자녀도 발전할 수 있고, 부모도 자신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네 말이 맞아. 부모의 사랑은 때론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지. 하지만 그 사랑은 가치나 쓸모로 평가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란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 자산이야.

특히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녀가 실패하거나 실수했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심리적 기반이 되어준단다. 부모도 자식과 함께하며 지속적인 기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결국 궁극적인 삶의 행복과 성장을 달성하는 방법이 사랑인 셈이지.”

로라의 말이 끝나자 데본이 손가락으로 식탁을 튕겼다. 수업을 시작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음, 생리학적 측면에서는 말이지… 사랑은 뇌에서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현상이지만 그 의미는 뇌의 화학 반응 정도로 그치지 않아. 우리가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살아가게 해주니까.

네가 우리를 도와서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진 것처럼, 사랑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고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방식이야.”

데본과 로라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랑은 비효율적이지만 행복을 주는 최고의 방식이며, 그것이 바로 벤이 데본과 로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존재인 이유라고.







며칠 뒤, 벤의 성적표가 나왔다. 점수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문제를 잘못 읽었다는 건 핑계였고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데본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오, 점수가 7점이나 오른 과목도 있구나.”

“전체 평균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아빠가 너에게 공부에 대해 말하는 건 좋은 결과를 얻으라는 압박이 아니란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기를 바라는 거야.”

“저, 아빠….”

“응?”

“그게….”

“무슨 일이니?”

“아빠, 죄송해요…. 지난번에 브라이언과 함께 장난을 치다 남의 자동차를 엉망으로 만들어 아빠를 힘들게 했잖아요.”

“괜찮다. 그때 너한테 화를 많이 낸 것 같아서 나도 미안하구나.”

“이번 주부터 주말마다 잔디 깎는 아르바이트를 할 거예요. 돈을 모아서 자동차 수리 비용을 꼭 갚고 싶어요.”

“네가 잔디를 깎는다고? 한 번도 해본 적 없잖아.”

“에이뎀이 알려줬어요. 어제 마당에서 연습해 봤고요.”

“벤,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반성으로 충분하단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제 잘못을 책임지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거실에서 대화를 듣던 로라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가왔다.

“잔디 깎는 일을 하겠다고?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니?”

“에이뎀은 우리 가족을 위해 크고 작은 일을 돕고 있어요. 본인의 임무에 책임을 다한 거죠. 그런데 저는요? 엄마 아빠가 저를 키우면서 필요한 건 다 주셨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를 돕지 않았고, 제 잘못에 대한 책임도 진 적이 없어요. 제가 에이뎀의 형이라고 했는데 에이뎀보다 못하면 안 되잖아요. 이제 엄마 아빠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요.”

데본과 로라는 벤의 진심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기특한걸?”

로라가 촉촉해진 눈으로 벤을 끌어안았다. 뒤이어 데본도 벤의 목을 감쌌다.

“사랑한다. 벤.”

벤도 로라와 데본을 끌어안았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존슨 가족의 훈훈한 모습을 카메라로 관찰하고 센서로 감지하던 에이뎀의 몸체에 알림 문구가 떴다.

[‘사랑’에 관한 데이터를 업데이트합니다.]


[업데이트 완료]


에이뎀이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존슨 가족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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