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속 마을 작은 오솔길, 고슴도치 토비의 집에서 분주한 아침이 시작됐어요.
“토비야, 일어나야지? 학교 늦겠어!”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어요.
“일어난다고요!”
토비가 가시를 곤두세우며 소리쳤어요. 토비는 요즘 모든 게 답답하고 짜증이 났어요. 엄마가 말을 하면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불쑥 올라왔지요.
엄마가 한숨을 쉬며 토비에게 다가왔어요.
“우리 토비, 요즘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떨리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토비도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시를 곧추세우고 웅크렸어요.
토비네 집에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벌써 몇 달이 지났어요. 토비는 엄마 아빠의 근심 어린 눈빛을 볼 때마다 모든 게 자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어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다 싫어.’
등교 준비를 마친 토비가 집을 나서려는데 동생 토토가 달려왔어요.
“누나, 도시락!”
“아, 깜빡했네….”
토비는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 도시락만 받아 들었어요. 자신과 다르게 항상 밝고 착한 토토가 왠지 모르게 못마땅했지요. 토비는 잘 갔다 오라는 토토의 인사를 뒤로하고 말없이 집을 나섰어요.
⁕⁕⁕
방과 후, 토비는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제일 친한 친구 라니가 달리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Go, 라니! Go!”
체육 선생님 구호에 맞춰 라니가 3옥타브 톤의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빠르게 한 바퀴 돌았어요. 토비는 라니의 달리기를 구경하며 운동장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어요. 훈련을 끝낸 라니가 토비를 발견하고 다가왔어요.
“토비야, 무슨 일 있어?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여.”
“그냥… 집에 가기 싫어서. 엄마는 맨날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가족들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도 싫어.”
“나도 전에 그런 적 있었어. 이유 없이 화나고, 짜증 나고…. 나 혼자 고민할 땐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새 라니는 토비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어요. 운동장 끝에 도착했을 때 라니가 수풀 끝을 가리켰어요.
“저기 연못 보여?”
“알지,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연못이잖아.”
“연못을 건너서 북쪽으로 쭉 가면 숲속 끝 마을이 나와. 그곳에 비가 그치면 엄청 큰 무지개가 뜨는데 정말 아름다워. 마음이 답답할 때 그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정말? 난 한 번도 못 봤는데.”
“당연하지. 이 마을에서 그 무지개를 알고 있는 동물은 별로 없어. 나도 우리 아빠가 데려가 주셔서 알았어. 너도 한번 가봐. 대신 꽤 멀어서 조심해야 해.”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라니, 토비의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날 밤, 저녁을 먹은 토비가 방에 들어가자 엄마 아빠가 한쪽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보, 우리 토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비의 마음 상담 선생님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엄마가 한숨을 쉬며 낮에 선생님과 얘기했던 내용을 말했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뭘 해줘야 좋을지. 토비의 웃는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밤마다 토비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게 돼요. 들어가서 안아주고 싶은데 토비가 싫어할까 봐….”
“시간이 필요하다니 우리가 좀 더 기다려줍시다. 토비도 많이 힘들 거예요.”
엄마는 토비의 방을 바라보며 다시 걱정에 잠겼어요. 토도독토도독,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
새벽녘, 토비는 요란한 빗소리에 잠이 깼어요. 빗소리를 듣다 라니가 말한 무지개가 생각났어요. 캄캄한 하늘은 무섭고 날이 갤지도 알 수 없었지만, 토비는 무지개가 꼭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깰세라 살금살금 집을 나섰어요.
밖으로 나오니 비가 더 많이 내렸어요. 토비는 걱정이 되면서도 무지개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숲에 들어서자 파랑새 한 마리가 큰 나뭇잎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어요.

“고슴도치 아니니? 비가 많이 오는데 그 짧은 다리로 어딜 가는 거야?”
“뭐라고? 이래 보여도 그렇게 짧지 않아!”
“맞아, 사실은 내 다리가 더 짧지. 미안.”
“괜찮아. 지금 무지개를 찾으러 가고 있어. 무지개를 보면 마음이 뻥 뚫린다고 들었거든.”
요즘 가족들에게 자꾸 짜증을 내게 된다는 토비의 말에 파랑새가 깃털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내며 말했어요.
“나도 그런 적 있어.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 간섭처럼 느껴졌거든. 부모님은 늘 나에게 비행에 대해 주의를 주셨어. 나도 꽤 잘 나는 것 같은데 말이야. 하루는 엄마에게 바람이 아무리 세도 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다가 바람에 휩쓸려 나무에 부딪혔지.”
“아팠겠다. 다치진 않았어?”
“응. 다행히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놀란 얼굴로 날아온 부모님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나더라. 다시 나는 게 겁이 났지만 부모님 말에 힘을 낼 수 있었어. 바람에 날개를 맡기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이 날 수 있다고. 정말이었어. 바람이 내가 높이 날 수 있게 끌어 올려주더라고.”
“우아, 신기하다.”
“지금 나는 가족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너도 가족과 함께하는 걸 행복으로 여기게 될 거야.”
토비는 파랑새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면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 멀리멀리 날아갈 것 같았거든요.
⁕⁕⁕
파랑새와 이야기하는 사이 시간이 꽤 지나버렸어요. 토비는 발길을 재촉했어요. 드디어 연못 근처에 다다랐을 때 토비 앞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어요.
“에이, 길이 막혀 있잖아? 가뜩이나 늦었는데….”
토비가 투덜대며 바위를 피해 돌아가려는 순간 꿈틀하고 바위가 흔들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나왔어요.
“토… 비… 로구나!”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거북이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빠르게 인사하고 지나가려는 토비를 보며 눈을 껌벅이던 할아버지가 느릿하게 입을 움직였어요.
“하암… 비가 많이 와서 잠이 오지 않는구나…. 모처럼 길가에 나와 등껍질을 적시니 시원하긴 한데…. 참… 아직 이른 새벽인데… 넌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는 거냐?”
토비가 한숨을 크게 쉬고 재빨리 말했어요.
“무지개를 찾으러 가요. 빨리 가야 해요!”
“무지개? 흠… 어디 보자…. 아하, 숲속 저…쪽 끝 마을에 있는 무지개를 말하는구나. 하… 정말 아름답지. 그래도 찬찬히 가렴…. 마음이 급하다고 일찍 도착하는 게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두르다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또… 웅덩이를 발견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면 아예 무지개를 못 보게… 될 수도 있단다…. 느리지만 꾸준히 가다 보면 가고 싶은 곳에 도달해 있을 거다…. 에… 그리고… 하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며 하염없이 먼 곳을 응시하던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어요.
“아, 생각났다…. 무엇보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니?”
토비는 문득 걸음을 늦췄어요.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