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싱숭생숭했던 고3 때, 한 자매님이 제게 멜기세덱문학상 공모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글 쓰는 건 좋아했지만, 대단한 재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뭐라도 써보라는 자매님의 요청(?)에 결국 노트북 앞에 앉아 어릴 적 엄마와 얽힌 일화를 수필로 적었습니다.
당시 영화과 입시 준비를 하며 밤낮없이 학원에 가고,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광속으로 떨어졌지요. 슬펐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수능을 치고 지원할 학과를 찾다가 문예창작학과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영화과 입시와 유일한 공통점이 있는 학과였기 때문입니다. 제 마지막 희망이었지요. 입시를 겪은 분은 알겠지만 원서를 쓸 때 예비 전화번호를 기재하는 칸이 있습니다. 보통 부모님 또는 형제자매의 전화번호를 넣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번호뿐 아니라 문학상 공모지를 내밀었던 자매님 번호까지 기재했습니다. 그만큼 간절했나 봅니다. 그 주 안식일 오전 예배가 끝난 직후 그 자매님이 제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대학에 합격했으니 빨리 전화 받아보라고요. 저를 포함해 가족 모두에게 전화가 왔지만 아무도 못 받고, 마지막으로 자매님에게 전화가 온 겁니다. 그렇게 덜컥 문예창작학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거의 동시에 문학상 당선 축복도 받았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1년 동안 ‘제 능력은 부족하지만 글로 달란트를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는데요. 기도의 응답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였습니다. 특히 시 쓰기 수업이나 글짓기 대회를 기다렸습니다. 제 생각을 원고지에 빼곡하게 눌러 담는 게 정말 뿌듯했지요.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소심하고 내성적인 데다가 언변이 부족해 늘 속으로만 삼켰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 못다 한 말을 다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전공으로 배운다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문예창작학과 입시를 준비해 본 적도, 창작에 대해 깊게 파본 적도 없어서 강의 첫 시간에는 수업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내내 토론만 하다가 끝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게 맞았습니다. 한 교수님이 대답을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지금은 정답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니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시더군요.
처음 학과에 들어가면 내가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정답은 없다면서도 등급을 매기는 성적 제도에 벽이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취향대로, 마음껏 많이 써봐야 내가 무엇에 약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 부분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세부 전공을 선택하고 특화된 분야에서 글쓰기 영역을 점점 넓혀가게 됩니다. 시를 쓰던 친구가 나중에 희곡을 써서 연극 무대를 꾸미기도 했지요. 여러 과제 중에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을 실제 인물의 삶에서 채취하고 문학 작품으로 재구성해 보는 활동이었습니다. 제 인터뷰이(interviewee)는 엄마였습니다. 엄마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듣고 보니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였지만, 몰라도 한참 몰랐다는 걸 느꼈습니다. 전공을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의 내면과 삶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많이 와닿습니다.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하는 분들은 시간을 내서라도 책을 자주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쏟아지는 과제 더미와 시험 폭풍 속에서도 생각을 붙잡아 줄 동아줄이 튼튼해진달까요. 한 친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독서 노트를 작성했습니다.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 구절에 밑줄을 긋고 노트에 정리하곤 했지요. 그렇게 하면 기억에도 오래 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서요.
글을 많이 쓸수록 글쓰기가 쉬워질 겁니다. 평소 학생부 생활 하며 얻은 깨달음이나 하루를 마감하고 나서 기분을 글로 적어보세요. 재밌게 꾼 꿈이나 갑자기 떠오른 발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해 놓는 것도 좋습니다. 아, 소울에 투고도 많이 해보세요. 지금, 절대 돌아오지 않을 이 예쁜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게요.
#2
학생이었을 때 저는 뼛속까지 문과생이었습니다. 특히 문학 수업을 좋아했는데요. 선생님이 작품을 설명해 주시면 혼자 읽었을 때는 몰랐던 의미와 시대적 상황, 작가의 배경까지 알게 되니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업을 듣다 감동해서 혼자 울컥한 적도 있고요.
저는 문예창작학과가 다양한 문학 장르의 이론과 유명한 작품을 심도 있게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습니다. 큰 오산이었습니다. 멋있는 문학 작품을 ‘내가’ 만들어내야 하는 학과였지요. 심지어 동기들 앞에서 제 과제물로 합평도 하고, 작품의 완성도가 곧 성적이 되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1학년 때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입학 전에 학원까지 다니며 글쓰기를 배워 온 동기들, 청소년 시절에 자신만의 작품을 많이 써본 동기들 사이에서 시 한 편 써본 적 없는 제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점차 흥미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문학 작품 특성상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었기에 수업 시간에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열린 마인드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이감도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좋은 글을 쓰는 저만의 방법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면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늘어놓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무조건 화려하다고 좋은 글이 아니더라고요. 과도한 욕심은 조금씩 내려놓고 진솔하게 쓰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문학은 예술의 한 분야지만, 오히려 일기 쓰듯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에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을 하나하나 꺼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며 글을 쓰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수업 때 제 글이 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창작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뒤에 나타난 창작물은 성적표에 찍히는 알파벳이나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요. 글은 자신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이 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나 신앙생활을 회고하며 쓰는 글은 많은 식구에게 힘을 주고 소중한 한 영혼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 작성해 주신 성경 말씀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처럼요.
현재 제게 허락해 주신 달란트를 십분 활용하여 문서 선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녀들에게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 글을 쓰고 거듭 검토하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며 당신의 사랑이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진리 책자를 집필하신 아버지처럼 글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 ‘세대를 뛰어넘어(語)울림’의 ‘진로 안내서’는 진로나 적성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