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추정 기자느헤미야, 에스라

추정 기록 연대B.C. 420년경

약자

장수13장



〈느헤미야〉에는 〈에스라〉에 나온 성전 재건 이후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귀환 하여 성전을 재건했고, 에스라의 지도로 2차 귀환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성전만 세워졌을 뿐, 성벽은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고 성문들도 불타 없어졌으며 그곳에 거하는 백성들은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3차로 귀환한 느헤미야는 선지자들의 예언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주요 인물

느헤미야

바사 제국의 술 관원(왕에게 진상하는 술을 관리하는 고위 관직)이 된 유대인. 바사에서 평안히 지낼 수 있었지만 자청하여 예루살렘 총독으로 귀환했다. 그는 외부의 훼방, 이스라엘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며 성벽을 재건하고, 에스라와 함께 백성들의 신앙 개혁에 힘썼다.

에스라

2차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학사이자 제사장.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한 후,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쳤다.

산발랏

사마리아 총독인 호론 사람.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후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려 하자 위협을 느끼고 공사를 방해했다.

도비야

암몬 사람으로, 산발랏과 작당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한 관리.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예루살렘성이 재건된 후로는 이스라엘 귀족, 제사장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주요 내용

예루살렘 귀환을 바라는 느헤미야(느 1장~2장 10절)

바사 왕 아닥사스다 제20년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동족들이 환난을 당하고 성은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슬피 울며 수일을 금식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이 근심 가득한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상황을 말하고, 예루살렘성을 중건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왕은 느헤미야의 청을 흔쾌히 허락하고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또한 건축자재와 군대 장관, 마병까지 지원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느 2장 11절~3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성을 비밀리에 답사한 후,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중건 계획을 밝혔습니다.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도우신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모두 힘을 내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성벽 재건 공사는 구획을 지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훼방(느 4장, 6장 1~14절)

산발랏과 도비야는 처음부터 예루살렘성 재건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사에 착수하자 분개해서 본격적으로 훼방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며 악담하고, 몰래 침입해 백성들을 치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 중 얼마를 칼과 창과 활로 무장시켜 밤낮 성을 지키도록 하고, 두려움과 실의에 빠진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음모를 들킨 방해자들이 계획을 거둔 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짐을 나르는 자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한 손에는 무기를 잡았으며, 성벽을 쌓는 이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일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매수해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흉계까지 꾸몄지만,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위기를 넘겼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느 5장)

성벽을 재건하는 데 또 다른 장애물은 내부적 문제였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은 빚내어 세금을 내고, 먹을 것이 없어 땅과 집을 저당 잡히고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자식들을 종으로 파는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동족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챙기는 귀족과 관리들을 꾸짖었습니다. 그의 질책을 받아들인 귀족과 관리들은 가난한 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전당 잡은 밭과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지내는 12년 동안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았고, 성벽 쌓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재건된 예루살렘성(느 6장 15절~7장)

성벽 중건 공사가 끝났습니다. 대적자와 주위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크고 넓은 성읍이지만 성안에 사는 인구가 적고 살 만한 집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1차 귀환 한 자들의 명단을 정리해서 외곽에 흩어져 살던 제사장, 레위 사람, 일부 백성을 예루살렘성으로 모아 정착하도록 했습니다.
한편 도비야는 유다 귀족의 사위가 되고, 또 다른 귀족과 사돈을 맺으며 여러 귀족과 결탁했습니다. 귀족들은 느헤미야에게 도비야를 칭찬하거나 느헤미야가 한 말을 도비야에게 일러바쳤습니다. 도비야는 느헤미야에게 계속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에스라의 율법책 낭독(느 8~10장)

성력 7월 1일(나팔절),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는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15일 초막절에는 규례대로 나뭇가지를 취해 예루살렘 성안에 초막을 지어 7일간 즐거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절기가 끝난 후,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려서 이방 나라의 침략을 당했던 지난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좇기로 맹약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백성들(느 11장)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성에 머물렀고, 백성들 중에서 10분의 1이 제비로 뽑혀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습니다.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기로 한 사람은 백성들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성 낙성식(느 12장)

예루살렘 성곽 낙성식이 열렸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히 하고,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찬양대는 성벽 위를 걸으며 성전까지 행진하고, 그 뒤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뒤따랐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이날, 성전 직무를 담당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위한 제도도 재정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개혁(느 13장)

느헤미야는 총독이 된 지 12년 만에 바사 왕에게 갔다가 말미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사이 백성들은 갖가지 죄를 저질렀습니다.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과 분리되었는데, 제사장 엘리아십이 성전 기구와 제물을 보관하는 큰 방을 암몬 사람인 도비야에게 내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분노하여 그의 세간을 밖으로 내던지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여 본래 용도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십일조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받을 몫을 받지 못한 레위 사람들은 성전 직무를 버리고 밭으로 떠났습니다. 느헤미야가 레위 사람들을 제자리에 세우고 나서야 백성들이 다시 십일조를 행했습니다. 이어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자들을 꾸짖고 안식일에 성안에서 장사하지 못하도록 조치했으며, 산발랏의 사위가 된 제사장을 내쫓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풍습에서 떠나 하나님만 거룩하게 섬기도록 애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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