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 (남 유다 역사)


기자미상

기록 연대미상

약자왕하

장수25장



〈열왕기상〉이 북 이스라엘 아합왕과 남 유다 여호사밧왕의 이야기로 끝나고, 이어지는 〈열왕기하〉에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최후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분열 왕국 시대 많은 왕이 하나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남 유다에서는 요담왕, 아하스왕, 히스기야왕 시대에 이사야와 미가가, 요시야왕 시대에 스바냐가 선지자로 활약했습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하나님께 순종한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등 선지자들이 심판을 경고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남 유다도 B.C. 586년경 바벨론의 침략으로 무너져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주요 인물

히스기야

남 유다 제13대 왕.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했으며 오랫동안 지키지 않은 유월절을 지켰다.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가 남 유다를 침략했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나라를 지켰다.

요시야

히스기야의 증손. 남 유다 제16대 왕. 성전 보수 공사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에 따라 유월절을 지켰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으로 기록되었다.


남 유다 역사

<열왕기하 속 남 유다 왕>
여호람 – 아하시야 – 아달랴 – 요아스 – 아마샤 – 아사랴(웃시야) – 요담 – 아하스 – 히스기야 – 므낫세 – 아몬 – 요시야 – 여호아하스 – 여호야김 – 여호야긴 - 시드기야

아달랴의 왕위 찬탈(왕하 11장=대하 21~23장)

여호사밧을 이어 유다 왕이 된 여호람(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동명이인)은, 이스라엘 아합왕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여 아합의 악행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여호람과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도 똑같았습니다.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자, 아달랴는 다른 왕자들을 죽이고 자신이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하시야의 막내아들 요아스(이스라엘 왕 여하스와 동명이인)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자 자신의 고모인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여호야다는 백성들과 함께 아달랴를 처단하고 바알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7세에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의 실정(왕하 12장=대하 24장)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우상숭배를 허용하고,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하자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성물을 모두 갖다 바치는 등 실정을 저질렀습니다.
요아스는 신하들의 손에 죽고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아하스(왕하 16장=대하 28장)

아마샤 이후 왕이 된 아사랴(웃시야), 요담은 산당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요담의 아들 아하스왕은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신을 좇으며 새로운 산당을 짓는 등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아람과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두려워하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했지만 아하스는 그 충고를 무시하고 앗수르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사 7장).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아람을 물리쳤지만, 그 결과 유다는 앗수르에 엄청난 양의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됩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왕하 18~19장=대하 29~32장 23절)

유다 왕이 된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는 유다에 가득한 산당을 허물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또 백성들이 그때까지 섬겨온,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놋 조각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하시므로 그의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유다도 넘봤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종 랍사게를 유다로 보내 하나님을 조롱하며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한 히스기야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가 유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송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왕하 20장=대하 32장 24~31절)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충성심을 기억하시고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기로 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증표를 요구하자 해시계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왕은 사절단을 보내 히스기야를 병문안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사절단에게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 군기고 등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일로 이스라엘의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왕하 21~23장=대하 33~35장)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세와 아몬이 차례로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가 없앴던 산당을 다시 만들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왕이 되어 우상을 제거하고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성전을 수리하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언약책(율법책)을 성전에서 발견하고,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백성들과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애굽에 끌려가 죽고, 형제 여호야김(엘리야김)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에 조공을 바치느라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뒀습니다.

유다의 멸망(왕하 24~25장=대하 36장)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왕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고, 여호야긴을 포함한 왕족과 유다 지식층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긴 대신 그의 숙부 시드기야(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친애굽 정책을 펼쳐 바벨론을 배반하자, 바벨론은 다시 예루살렘을 2년 가까이 포위하고 공격했습니다.
바벨론 군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빈천한 자를 제외한 유다 귀인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갔습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지 37년 되던 해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은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주고, 그가 일평생 풍족히 생활하도록 선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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