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 下

*

“이수찬, 식탁에서 뭐해? 화장실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지?”
그녀는 수찬의 등교 준비로 한창이었다.
“이거, 이거. 수연이, 수연이.”
수찬은 핑크색 삼단 도시락을 가리켰다.

‘엄마, 김밥은 참치랑 치즈로! 아! 바나나 꼭 챙겨주세요.’
어제 신신당부하던 수연의 얼굴과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수찬이 나가야 일어나던 애가 새벽같이 일어나 설레발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소풍날 도시락을….’
그녀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금이라도 수찬을 데리고 빨리 수연의 학교로 가면 출발 직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들이 많은 곳에서 그녀와 수찬을 보면 수연이 당황할 것이다.
“수찬아, 우리 오늘은 빠르게 준비하고 나갈까? 저거 수연이 갖다줘야 돼.”
“수연이, 수연이.”
“그래. 예쁜 동생을 위해 우리가 예쁜 짓 좀 해보자.”
그녀는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한 손으로는 수찬의 손을 잡고 서둘러 종종걸음을 쳤다. 수찬도 숨을 헉헉거리며 달리듯 걸었다.

수연의 학교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버스는 출발 전이었다.
“수찬아, 여기가 수연이가 다니는 학교야. 수연이 친구들 많으니까 수연이를 위해서 잠깐만 조용히 하자.”
수찬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학교 운동장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들뜬 아이들 틈에서 금방 수연을 찾아냈다. 멀리서 봐도 너무 예뻤다.
“저기, 학생! 혹시 몇 학년이에요?”
그녀는 교문 앞에서 한 학생을 붙잡았다.
“3학년이요.”
“아, 잘됐다. 이거 3학년 3반 이수연 학생한테 전해줄 수 있나요?”
“네, 주세요! 옆 반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학생은 수연의 반 쪽으로 가더니 금세 수연에게 도시락을 전했다. 수연이 교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수찬의 손을 잡고 황급히 학교를 떠났다. 잘 보지 못했지만 수연은….
‘웃고 있었겠지.’

*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각자 도시락을 꺼냈다.
“와, 대박. 삼단 도시락! 엄마가 배달까지 해주시고, 너네 엄마 천사!”
“어떻게 너는 바보같이 소풍날 도시락을 까먹냐? 바나나 못 먹을 뻔.”
“흥, 바보라고 했겠다. 바나나뿐이겠니? 삼단 도시락도 못 먹는 수가 있다.”
“바보는 바다의 보배.”
“박혜린, 어디서 그런 골동품 같은 말을….”
혜린이를 흘기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조금 흐트러진 반찬들과 과일. 그래도 정갈하고 깔끔하게 담겨 흠잡을 데 없었다.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는데 더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고, 반찬을 만들고, 과일을 담았을 엄마. 오빠를 데리고 허겁지겁 뛰었을 엄마. 저 멀리 교문 뒤에 숨어 있던 엄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맙다고 말 못 했는데.”
“뭐라고? 아, 엄마한테?”
“빨리 문자 드려. 우리 마음까지 담아서. 아, 맛있다!”

도시락 먹었어요.
맛있다. 고마워요.
친구들도 너무 맛있대요.
감사하다고 꼭 전해달래요.


답장은 내가 집 앞에 왔을 때 왔다.

녹슨 파란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펑펑 울었다. 엄마는 뭐를 그리 잘못해서 나한테 항상 미안할까.
“이수연, 왜 울어?”
“흑, 아빠.”
“집 열쇠 없어? 연락하지. 오늘 소풍 간 거 힘들었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물만 닦았다. 아빠는 그런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아빠와 마루 미닫이문을 활짝 열고 마당을 바라보고 앉았다.
“밥은?”
“도시락 많이 먹었어요. 아빠는요?”
“엄마랑 오빠 기다렸다가 같이 먹으려고.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서.”
“저기… 오빠요. 오빠가 특별한 거 언제 알았어요?”
“네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오빠가 세 살 때.”
“안… 힘들었어요?”
“그냥 엄마랑 둘이서 많이 울었지. 우리가 다 잘못한 것 같아서. 오빠한테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너한테도 미안해서.”
“아빠랑 엄마 잘못 아닌데….”
“그래도 너무 미안해서. 지금도 수연이 이렇게 힘든데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오빠 챙기느라 너 혼자 두게 할 때 많아서 미안하고. 하지만 고마워. 수찬이도 수연이도 엄마 아빠 아들딸이 되어줘서 너무너무.”
파란 하늘과 석양이 만나 묘한 빛을 띠었다. 그 빛 사이로 엄마와 오빠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녀가 오붓하게 앉아 있으니 보기 좋네.”
“아빠, 아빠. 수연이, 수연이.”
오빠가 헤벌쭉 웃었다.
“이거, 이거.”
오빠는 자기 가방을 부산스레 뒤졌다. 그리고 꺼낸 것은,
“바나나?”
“수연이, 바나나 좋아. 바나나 좋아.”
어제 내가 계속 바나나 챙겨야 한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맹이 지능을 가진 이 오빠가, 그래도 내 오빠라고.
“의사 선생님이 수찬이한테 선물로 바나나를 줬더니, 글쎄 수연이 줘야 한다고 챙기지 뭐야. 엄마도 안 준다고 하고. 좋겠다, 수연이는.”
“고마워. 오… 빠.”
오빠는 몸을 배배 꼬았다.
“우리, 아빠랑 엄마랑 오빠 다 같이 장 보러 갈까요? 이것저것 왕창 사요.”
“너 도시락 많이 먹었다며, 배고파?”
“아니, 그냥요. 오늘 좀 특별해서, 특별한 날이라.”
특별한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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