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가 노란색 운동화를 가리켰어요. 신발 가게 아저씨가 운동화를 꺼내 사랑이 앞에 놓아주었어요. 사랑이는 발을 쏙 넣었어요.
“걸어봐라. 괜찮니?”
사랑이는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어요.
“엄마! 저 이거 갖고 싶어요.”
“그래, 알겠어. 잘 신고 다녀야 한다.”
“네! 감사해요, 엄마.”
아저씨는 신발 상자를 봉투에 담아 사랑이에게 건네줬어요. 사랑이는 봉투를 앞뒤로 흔들며 신발 가게를 나왔어요.
“우리 드디어 주인이 생겼어!”
“이름이 사랑이라고 했나?”
상자 속에서 노란 운동화 왼짝과 오른짝이 신나서 떠들었어요.
“사랑이가 우리 예쁘게 신고 다녔으면 좋겠다.”
“맞아. 요즘 주인 마음에 안 들어서 금방 버려지는 친구들이 많다던데…. 사랑이는 우릴 아껴주겠지?”
노란 운동화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사랑이 집으로 향했어요.
사랑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로 산 운동화로 갈아 신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봤어요. 사랑이를 보는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지요.

“우리가 마음에 드나 봐.”
“응, 정말 다행이야. 오래오래 신어줬으면 좋겠다.”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와 함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와요.
“사랑아, 저녁 먹자.”
“네!”
캄캄한 밤이 왔어요. 사랑이는 자기 전 노란 운동화를 다시 보려고 현관으로 갔어요. 사랑이가 속삭였어요.
“내일 보자. 잘 자!”
사랑이네 가족이 모두 잠들자 사랑이 가족 신발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아빠 구두 오른짝이 빠진 신발이 없는지 확인하고 말했어요.
“여러분, 집중해 주세요. 오늘 새로운 가족이 왔습니다. 사랑이의 운동화라고 하네요. 반갑게 맞아줄까요?”
아빠 구두는 군데군데 해졌지만 목소리는 포근했어요. 신발들은 환한 미소로 노란 운동화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아빠 구두 왼짝도 거들었어요.
“다들 앞으로 친하게 지내봐요. 그리고 그동안 수고한 사랑이의 옛 운동화와도 인사를 나눕시다.”
여기저기 상처 나고 밑창이 닳은 하얀 운동화가 앞으로 나왔어요.
“그동안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노란 운동화야, 사랑이가 넘어지지 않게 잘 도와줘. 우리 몸에 있는 상처는 사랑이와 함께한 추억들이야. 너희도 우리처럼 사랑이한테 오래오래 사랑받길 바라!”
신발들은 사랑이의 옛 운동화에게 박수를 쳐주었어요.
“자, 밤이 깊었으니 이만 자도록 합시다. 다들 굿나잇!”
신발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어요. 노란 운동화도 원래 있던 현관 한쪽으로 갔지요. 오른짝이 왼짝에게 말했어요.
“아까 들었지? 우리도 사랑이가 힘들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자!”
왼짝은 비몽사몽 대답했어요.
“응…. 열심히….”
“사랑아, 학교 가야지!”
엄마가 사랑이를 깨웠어요. 사랑이는 일어나 세수하고 밥을 먹었어요. 아빠가 출근하며 사랑이를 안아주었어요.
“사랑아, 아빠 다녀올게. 사랑이도 학교 잘 다녀와.”
“네,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현관을 나서는 아빠 구두는 신발들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고 떠났어요.
사랑이가 가방을 챙겨 현관 앞에 섰어요. 그리고 발그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노란 운동화를 신었어요.
“사랑아, 준비물 다 챙겼어?”
“네, 가방에 넣었어요.”
“잘 다녀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사랑이는 학교까지 깡충깡충 뛰어갔어요. 노란 운동화는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요.
“얘들아, 나 신발 샀어! 예쁘지?”
사랑이는 학교 앞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새 운동화를 자랑했어요.
“우아, 정말 예쁘다!”
“사랑아, 너랑 잘 어울려.”
사랑이는 친구들 칭찬에 기분이 좋았어요. 노란 운동화도요.
아이들은 실내화로 갈아 신고 반으로 들어갔어요. 노란 운동화는 신발주머니 안에서 사랑이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지요.
종례 시간, 사랑이네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어요.
“여러분, 곧 있으면 가을 운동회가 열려요. 초등학교 입학해서 처음 하는 운동회죠? 내일부터 매일 운동회 연습 하니까 체육복 꼭 챙겨 오세요.”
“네!”
가방을 메고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간 사랑이와 친구들은 신발을 갈아 신고 조잘조잘 떠들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배고프지? 엄마랑 간식 먹자.”
사랑이는 신발을 훌렁 벗고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어요. 엄마는 사랑이 신발을 정리하고 간식을 준비했어요.
“사랑아,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
“오늘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집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엄마 아빠랑 살 집이요! 다 마르면 집에 가져가라고 해서 사물함 위에 뒀어요.”
“어떤 집일지 기대되네. 참, 내일 준비물은 없니?”
“운동회 준비한다고 체육복 챙겨 오래요.”
“엄마가 챙겨 놓을게. 새 신발은 어땠어? 발 안 아팠어?”
사랑이는 빵을 베어 물며 곰곰이 생각했어요.
“살짝 아프긴 했지만 괜찮았어요. 계속 신고 가도 되죠?”
“사랑이가 괜찮으면 신고 가.”
사랑이와 엄마의 대화를 듣고 엄마 구두 왼짝과 오른짝이 말했어요.
“운동회라니, 괜찮을까? 아직 사랑이 발에 새 신발이 익숙하지 않을 텐데….”
“그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걱정이 가득한 엄마 구두에게 노란 운동화 왼짝이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괜찮아요! 사랑이는 우리를 좋아하니까요.”
오른짝은 사랑이가 걱정되었어요.
‘혹시나 우리 때문에 사랑이가 아파하면 어떡하지?’
뚜벅뚜벅 뚜벅뚜벅.
사랑이 아빠 구두가 무겁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들어왔어요. 아빠는 구두를 현관에 가지런히 벗어놓았어요.
“사랑아, 아빠 왔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그래, 사랑이도 학교 잘 다녀왔니?”
사랑이네 가족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현관에서는 사랑이네 신발들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시끄러웠어요.
“오늘 사랑이 친구들이 칭찬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주인공이었다니까요? 사랑이는 또 얼마나 우리를 아끼는지, 작은 먼지만 붙어도 바로 털고 물웅덩이도 조심조심 피해서 가더라고요. 거기, 사랑이 슬리퍼!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왼짝은 신발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오른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왼짝이 잠들었을 때 오른짝이 엄마 구두를 찾아갔어요.
“저기….”
“어, 무슨 일 있니?”
“운동회 연습 할 때 혹시나 제가 사랑이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요?”
“흠… 사실은 우리도 그게 걱정됐어. 아빠 구두에게 해결 방법을 한번 물어볼까?”
엄마 구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빠 구두를 깨웠어요.
“흐암, 무슨 일인가요?”
“흐아암, 열심히 일했더니 피곤하구만.”
“죄송해요, 주무시는데 깨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오른짝을 대신해 엄마 구두가 아빠 구두에게 노란 운동화의 고민을 전해주었어요.
“그렇군요. 첫날부터 그런 고민을 하다니 대단하네.”
“근데 너 오늘 힘 잔뜩 주고 다녔구나?”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너무 긴장돼서….”
“네 몸에 주름이 전혀 없으니까.”
오른짝이 자기 몸을 한번 훑어봤어요. 신발 가게에 있을 때처럼 어디에도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었지요.
“우리가 처음에 그랬어. 사랑이 아빠가 처음에 우리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거든. 사람들도 계속 멋지다고 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갔지.”
“구겨지면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할까 봐, 사랑이 아빠가 우리를 안 신어줄까 봐 두렵기도 했고.”
아빠 구두는 눈을 감고 잠시 말을 멈췄어요.
“그렇게 힘을 주고 며칠을 다녔더니 사랑이 아빠 발에 계속 물집이 생기는 거야. 나중에는 사랑이 아빠가 우리를 안 신더라고.”
“하루 정도야 그러려니 했어. 근데 일주일이 넘도록 우리보다 못생기고 허름한 구두만 신는 거 있지? 그래서 내가 그 신발한테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어.”
“그 비결이 뭐였는데요?”

“네? 편안함이요?”
“그 신발은 사랑이 아빠가 아프지 않게 모든 걸 포기했어. 돌멩이에 맞아도, 눈에 먼지가 들어가도 견뎠지. 사랑이 아빠가 구겨 신어도 소리 한 번 안 질렀다니까?”
“하하하. 맞아, 정말 대단한 친구였지.”
“우리도 몸에 힘을 빼고 사랑이 아빠와 하나가 되는 연습을 많이 했어. 덕분에 지금까지 사랑이 아빠의 애정을 받고 있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엄마 구두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른짝은 엄마 구두와 아빠 구두에게 꾸벅 인사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이를 위해서 노력해 볼게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