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 上

“수연아! 엄마, 오빠 데리고 학교 갔다 올게. 밥 차려놨으니까 먹고! 학교 잘 다녀와.”
엄마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하나, 둘, 셋…. 이쯤이면 나갔겠지?
나는 이불에서 나왔다. 창틈에서 서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아직 아침이 쌀쌀한 건지, 우리 집 웃풍이 봄날에도 여전한 건지. 삐걱삐걱대는 낡은 마룻바닥을 지나 현관이라 하기도 뭣한 여닫이문을 열었다. 물방울이 한 방울씩 퐁퐁 떨어지는 수돗가, 빨간 대야, 녹슨 파란 대문을 바라보며 차가움과 시원함 사이 정도의 바람을 한껏 들이켜 신나게 기지개를 켰다.
언제부터 아침 바람이, 여기가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아침이 싫었다. 혼자 남겨진 아침은 쓸쓸했다. 여기로 이사 온 후로는 더더욱. 일반 주택이나 빌라에서는 우리 집의 입주를 거절했다. 밀리고 밀려 재개발만 바라보고 있는 변두리 지역, TV에서나 볼 법한 작은 마당 딸린 구식의 집으로 밀려났다. ‘하늘이 준 보금자리’라고 엄마 아빠는 말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특별한 가족’이라고 늘 강조한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가족이야. 우리 수찬이 수연이는 엄마 아빠에게 매우 소중하고 특별하거든. 특별한 선물이지.”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픽 웃는다. 진짜 웃겨서.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를 보며 엄마 아빠의 말을 곱씹었다. 특별한 가족… 특별한 오빠….

*

“이수연, 안녕!”
“어, 민주 너 웬일로 일찍 왔네.”
“나는 안 보이냐?”
“아, 그래. 박혜린, 안녕.”
“도덕책 읽는 줄.”
민주와 혜린이는 중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다. 이사 와서 처음 사귄 친구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나 오늘도 오빠랑 싸웠다.”
“아니, 너는 어떻게 맨날 싸워? 초딩이니?”
“오빠가 초딩 같으니 문제지. 아, 몰라! 늙어서도 싸울 것 같아. 빨리 커서 군대나 가라!”
“수연아, 너도 오빠 있잖아. 너는 안 싸워?”
“별로.”
“와, 대체 비결이 뭐야?”
“아침부터 반 분위기가 뭐 이리 어수선해. 조회 내용 많으니까 얼른 다들 자리에 앉아!”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학교생활 오래 하고 볼 일이었다.
나는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빠가 초딩 같기만 해도 좋을 텐데. 친구들은 오빠가 아주 말이 없던가, 둘이 그냥 안 친한가 보다 하고 만다. 그래도 나는 ‘오빠’라는 말만 나오면 심장이 쿵쿵 뛴다.

*

버스 안, 수찬은 차창에 기대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창밖에는 배가 부른 여인이 서너 살짜리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웃으며 걷고 있었다.
‘딱 저맘때였지. 그때… 가슴이 무너졌었지. 그래도… 무너지면 안 됐었지.’
그녀는 수찬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기사식당으로 향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수찬의 학교와 가까운 곳에 일을 잡았다. 그녀의 집은 형편이 좋지 않다. 벌이가 시원찮아서라기보다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았다. 남편이 새벽부터 일하고 그녀가 쉬는 날 없이 일해도 빠듯했다. 그래도 수찬이 건강하게 자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수찬에게 좋으면 그녀는 그저 좋았다.
또 하나, 그녀와 남편이 걱정하는 것은 수연이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해도 고작 열여섯. 투정부리거나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수고했어요.”
그녀는 수찬의 하교 시간에 맞춰 식당 일을 끝내고 분주히 수찬의 학교로 갔다.
“수찬이 어머님 오셨어요? 오늘은 도자기 만들기 했어요. 수찬이가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정말요? 선생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수찬은 버스에 타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재밌긴 했나 보네.’
그녀는 수찬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고는 수찬을 깨웠다.
“일어나자. 이제 집이다.”
수찬은 ‘집’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수찬의 손을 꼭 잡고 집을 향해 걸었다.
“수찬아, 오늘 도자기 만들기 재밌었어?”
수찬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어, 엄마. 수연이, 수연이다!”
수찬은 방금보다 더 신나서 웃었다. 그녀도 좋아서 고개를 돌렸다. 수연은 주위를 요리조리 살피더니 조용히 뛰어갔다. 수찬은 수연을 따라가려고 그녀의 손을 잡고 뒤뚱뒤뚱 뛰었다. 그녀도 속절없이 뛰었다.
“수연아, 집에 왔니?”
“수연이, 수연이!”
“네.”
“그래, 미안하다. 쉬어라.”

*

“권민주는 오렌지, 이수연은 바나나 싸 오기. 약속이야.”
“알겠다고. 너나 딸기 꼭 가져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이 내일이다. 시험도 끝났겠다, 날씨도 좋겠다,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살 것들을 종이에 잔뜩 적고 주머니에 넣었다.
“수연이 왔어?”
“네! 이제 장 보러 가려고요. 과자도 사고… 바나나! 바나나 꼭 챙겨야 돼요.”
“혼자 가면 무거워서 힘들어. 좀 있음 아빠 들어오시니까 아빠랑 다녀와.”
“네!”
평소였으면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을 테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무엇을 물어도 “네”라고 할 만큼.
“수연이, 어디, 가?”
“소풍! 내일 소풍 가니까 오늘 시장 갔다 올 거야.”
“수찬이도! 수찬이도!”
기분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엄마를 봤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수찬아, 내일은 수연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소풍 가는 거라서 수찬이도 엄마도 같이 못 가요. 수찬이는 나중에 엄마랑 아빠랑 수연이랑 넷이서 같이 소풍 가자.”
“같이 가, 같이 가. 수찬이 가고 싶다!”
“아, 이수찬 너는 그냥 집에 가만있으라고!”
오빠는 어린애처럼 온몸을 웅크렸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수연이, 무서워. 무서워.”
나는 화가 나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폐 속까지 시렸다. 엄마가 오빠를 다 달랬는지 마당에 나왔다.
“수연아, 오빠가 답답해도 화내면 안 되는 거 알지?”
“몰라요.”
“그럼 오빠가 아무리 애 같아도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몰랐겠네.”
“죄송해요.”
엄마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너무… 따뜻했다. 이 손을 매일같이 잡는 오빠가 미웠다.
“수연아, 엄마가 오빠만 신경 써서 미안해. 그래도 수연이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가슴이 쿡 찔려서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종이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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