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자마자 방에 달린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이거 왠지 영화에서처럼 뭔가 대단한 실험을 당하는 느낌이다.
「이곳 1층에서는 미스터리 퀴즈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드리고 있습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그곳에서 질문지를 작성하게 됩니다. 작성이 끝난 후에는 3층으로 올라가 본격적인 미스터리 퀴즈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2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한쪽에서 문이 열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인가 보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넓은 것만 같았는데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서 그런지 통로가 좁다. 여기가 2층인가?
「2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테이블에 놓인 질문지를 작성해주신 후, 작성한 질문지를 가지고 3층으로 올라가주세요. 시간은 30분 드리겠습니다.」
스피커는 이 말을 마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층은 이걸로 끝인가? 무슨 질문이지?
1.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쓰세요.
2.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들을 쓰세요.
3. 자신이 살아오면서 잊지 못하는 일을 쓰세요.
4.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큰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대상(사람 또는 사물 등)을 쓰세요.
점수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제법 진지해져서 작성해갔다.
「30분이 되었습니다. 작성한 질문지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가세요.」
정확히 30분 후, 문이 열렸다. 마의 고지라 불리는 3층이다!
「3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층에서는 2층에서 작성한 질문지의 질문과 동일한 질문을 할 겁니다. 대답 내용에 따라 점수를 매기겠습니다.」
“아니, 어차피 똑같은 질문을 할 거면 뭣하러 미리 적게 한 거야?”
「2층에서 질문지를 작성하게 한 이유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윽. 목소리가 녹음이 아니라 라이브인가? 여기 정말 미스터리 한 곳이다. 아, 식은땀 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한 문제당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은 2분입니다. …첫 번째 문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일은 무엇인가요?」
난 점수를 많이 얻기 위해 어릴 때부터 한 착한 일들을 최대한 많이 썼다.
“어, 거리를 지나가다가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주웠고….”
「…」
“어, 엄마 어깨도 주물러드렸고, 모르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시면 같이 끌어드렸고, 먹을 게 있으면 철민이, 아, 아니 옆 사람과 같이 나눠 먹고… 많은데요.”
「5점 드리겠습니다.」
“네에? 점수가 뭐 그래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냉정하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중학교 때 공부 제대로 안 한 거요. 그리고… 중학교 때 왕따 당하는 애가 있었거든요. 이유 없이 애들이 괴롭혔는데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게 정말 후회돼요.”
「7점 드리겠습니다. 총점 12점입니다.」
“7점요? 아니 100점은 처음부터 안되는 거 아녜요?”
「퀴즈를 중단하셔도 됩니다.」
두 번째 문제에는 답을 더 짧게 대답했는데도 점수를 더 높이 줬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되는 건가?
“아, 아니에요. 계속해요.”
「다음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질문지의 3번 답은 매우 짧게 적었다.
일곱 살, 바닷가에서.
말로는 자세히 설명해야겠지?
“일곱 살 때, 여름에 해수욕장에 갔을 때예요. 사람이 엄청 북적거렸어요. 튜브 갖고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안 보였어요.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봐도 없었어요. 제가 울먹거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저 보고 뭐라 뭐라 하는데 하나도 안 들리고…. 그런데 어디선가 엄마가 막 달려와서 저를 안고 울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무섭다고 느꼈고…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거 봤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잊고 있었던 이야기. 산골 남자아이였던 나는 바다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 바다가 엄마를 잡아간 괴물 같았다. 엄마는 그때 나를 안고 “아가, 이제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하며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나도 크게 울었다.
「10점 드립니다. 총 22점입니다. 마지막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큰 상처를 준 대상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운 건 내 기억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무서워서였는지,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있다 아빠도 헐레벌떡 뛰어와 나를 안고, 힘이 빠진 엄마를 부축해서 텐트로 돌아왔다. 아빠는 말했다.
“호범아, 앞으로 시장 같은 데 갔다가 또 엄마 잃어버리면 엄마를 크게 불러. 엄마는 네 목소리 듣고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 알았지? 어떡하라고?”
“훌쩍. 엄마를 불러요.”
「1분 30초 남았습니다.」
지잉 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발신인은 ‘엄마’.
“…네, 엄마.”
“호범아, 언제 와? 도시락은 철민이랑 잘 먹었어?”
항상 날 걱정하는 사람.
“이호범, 듣고 있어? 거기 전화 잘 안 터져? 크게 말해야 되나? 저∙녁∙에∙뭐∙먹∙고∙싶∙어? 들∙려?”
항상 내가 먼저인 사람.
“엄마. …맨날 아침 안 먹어서 미안해요.”
“…야! 너 왜 그래? 축제에서 뭐 하니?”
“앞으로 잘 먹을게요.”
“정말? 기분 좋네, 호호호. 좋아, 엄마가 오늘 저녁에 소고기 구워준다. 얼른 와.”
뚝
「30초 남았습니다.」
나는 질문지에 4번 답을 적지 않았다. 상처를 준 대상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엄마요. 엄마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제 밥을 차려요. 사실 저희 엄마 몸이 좀 약해서 금방 피곤해하거든요. 그거 알면서 저는 한 입도 안 대요. 내가 뭐 먹는지, 내가 언제 오는지 관심 갖는 유일한 사람인데, 저는 그게 그냥 귀찮아요. 그래서 무시하고 하루에도 몇 번, 아니 수십 번은 상처를 줘요. …그런데 엄마가 상처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워낙 철인인 척해서.”
「마지막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려? 문 안으로 조심히 들어갔다. 또 문이 나왔다. 문에 글이 써 있다.
‘나에게 돈이 많다면, 나에게 재능이 많다면, 나에게 권력이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텐데.’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보물을 찾기 위해 또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 위해 미스터리 퀴즈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발을 디딘 당신은 돈, 재능, 권력보다 큰 보물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문 밖에 있는 것은 보물을 찾은 당신에게 드리는 작은 축하의 선물입니다.

문을 열었다.
“우아!”
탁 트인 경관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내 눈 속으로 몰려왔다. 석양에 물든 단풍이 장관이다. 건물이 높아서인지 세상을 다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지금은 그냥 옥상처럼 보여도 건물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여기는 스카이라운지였을 것이다.
어? 옥상 한가운데 작은 함이 있다. 이거야 원, 끝까지 영화 같은 장면이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저 함을 열어봐야겠지.
함에 들어 있는 건… 편지다.
미스터리 퀴즈의 우승자에게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선물은 하늘과 땅이 주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대신 전달해 주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이사회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물질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먼저는 학생들이 마음의 눈을 열어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스터리 퀴즈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뿐 아니라 많은 성인들이 방문해 주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선 당신이 학생이건 어른이건, 살아온 시간이 짧든 길든 당신은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의미 있는 일 아니었을까요.
퀴즈에서 부른 점수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단지 말하는 이들이 무언가를 느꼈다고 판단되면, 마지막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미스터리 퀴즈의 실체가, 유치한 선생들의 장난이란 사실이 금방 들통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리 퀴즈의 우승자들은 아무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도 값진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그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미스터리 퀴즈는 이달로 마지막입니다. 이 건물은 지난 9월부터 3개월간만 대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 퀴즈의 마지막 달, 이곳에 선 당신. 당신의 가슴에 담아가는 그 소중한 보물을 평생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 11월에 △△고등학교 이사장
“하, 뭐야. 하하. 하하하. 이 세상에 괴짜는 강철민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하하. 아! 철민이!”
옥상 왼편에 작은 계단이 있다. 저기가 나가는 통로인가 보다.
나는 서둘러 뛰어 내려갔다. 분명 또 늦었다고 뭐라 할 거다.
“왔냐? 아, 배고파, 배고파. 집에 빨리 가자.”
웬일로 별 말을 안 하지?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설마?
“철민아, 너 저번에 한 번 왔었다고 했잖아.”
“응.”
“그때 혹시 너….”
“나 뭐?”
“…아니, 그때도 질문 똑같았냐고.”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어. 그래서 내가 연구해서 이번에는 아주 멋진 답을 적었지!”
“뭐라 적었는데?”
“가장 잘한 일, 밥알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기. 가장 후회하는 일, 아침에 밥 먹고 시간 없어서 빵을 못 먹고 나온 거. 기억에 남는 일, 아까 먹은 이호범 엄마표 도시락. 상처 준 대상. 아침마다 시끄럽게 짖는다고 혼냈던 옆집 멍멍이.”
“넌 정말… 사람이 일관성 있어.”
“그럼, 자고로 사람은 한결같아야 돼.”
그래, 넌 진짜 멋진 친구다.
“오늘 엄마가 소고기 구워준대. 우리 집 가서 저녁 같이 먹자.”
“아, 진짜? 흑, 오늘 안 되는데. 아빠 엄마가 일찍 들어오신다고 했단 말이야. 모처럼 가족끼리 모여서 저녁 먹기로 했어. 우리 집도 왠지 오늘 잘 먹을 것 같은 예감?”
“그래? 그럼 우리 이제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볼까?”
“좋아! 맛있는 밥이 있는 집으로 가자!”
엄마는 정말 소고기를 구워줬다. 아빠도 좋으신가 보다. 하긴, 이렇게 얼굴 마주하고 밥 먹기도 참 오랜만이지.
아빠, 아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엄마밖에 말 못했지만… 아빠도 저한테 보물이에요.
“아빠.”
“왜?”
“고마워요.”
“…아, 용돈 주고 간 거? 야, 갑자기 그런 말 하니까 놀랐잖아. 고기 먹어.”
아니요. 전부 다요.
11월의 산골은 춥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