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의 그 시절은 어땠나요?

◆ 엄마

유년 시절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할머니를 도와 청소, 요리, 설거지를 많이 했지요. 지금은 마트에서 간식을 쉽게 사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해서 딸기에 설탕을 뿌려 먹거나 주스를 얼려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었어요.
말썽도 자주 부렸어요. 친구들이 입은 예쁜 옷을 사 달라고 떼쓰고, 마을 노래자랑이 열렸을 때는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상품을 받고 싶어서 친구들과 몰래 참가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저를 위해주셨어요. 먹을 것 안 먹고 돈 아껴서 문제집을 사주시고, 도시락에 달걀프라이(친구들이 뺏어 먹지 못하게 밥 밑에 넣어주셨어요), 멸치볶음, 묵조림 등 좋은 것만 싸주셨지요. 덕분에 제가 잘 클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엄마를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 죄송해요.

학창 시절

관악대를 선두에서 지휘하고, 합창단 소프라노를 하면서 상도 받았어요. 좋은 추억이 많아요. 힘들었던 점은 만원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것.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적도 있어요. 한번은 가방을 의자에 두고 몸만 먼저 창문으로 내렸는데 버스가 그냥 가버려서 학교에서 펑펑 울었어요. 그날 이후로 버스를 타면 손에서 가방을 절대 놓지 않았지요. 눈이나 비가 쏟아지면 가끔 버스가 안 왔어요. 그러면 1시간 넘게 걸어 학교에 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발이 꽁꽁 얼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끈기 있게 걸어갔는지 신기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에요. 마을 사람들끼리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었죠. 일요일마다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을 청소하고, 풀잎을 베어 거름을 만들었어요. 벌레도 무섭고 거름 냄새가 싫었지만 꾹 참고 했어요. 쌀이 부족할 때라, 쌀에 보리나 잡곡을 섞어 먹고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자는 혼분식장려운동도 있었고요. 88서울올림픽 이후로 경제가 빠르게 발전했어요.

현재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주셔서 엘로힘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족과 이웃과 함께할 수 있어 강력(?)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 아빠

학창 시절

엄마와 단둘이 살아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취미가 있었는데, 바로 달리기예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새벽에 일어나 6㎞ 정도를 뛰었어요. 엄마가 걱정이 크셨죠. 말수도 굉장히 적어서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말할 줄 아냐고 물어보시기까지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울적하네요.

군대 시절

일반 군부대가 아닌 특수부대에 갔어요. 대위보다 높은 직급이었죠. ‘방위’라고….(오늘날로 따지면 상근예비역, 사회복무요원) 아버지가 없는 부선망 독자라 방위병으로 6개월 만에 제대했어요. 그래도 밥 먹고 훈련만 해서 힘들었어요.

현재

기계 정비사입니다. 가끔은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일이 고되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천국 소망까지 있으니 힘이 나네요.


◆ 느낀 점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내 모습을 돌아봤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잘하고 있을까?’
엄마 아빠는 희로애락을 겪으며 지금의 멋진 모습으로 성장하셨다. 나 역시 발전할 부분은 더 발전시키고, 고칠 점은 고쳐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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