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되면 오랜만에 가족, 지인과 만나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 연례행사에는 다들 각양각색의 이야깃거리를 가져온다. 그런데 늘 똑같은 이야기가 담긴 보따리가 있다. 직장 문제가 든 삼촌의 보따리도, 재정 걱정이 든 작은아빠의 보따리도 아닌 우리 엄마 아빠의 보따리다. 엄마 아빠는 친척들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다가도 대화가 멈추면 보따리를 열어 매년 꺼냈던 이야기를 또 꺼낸다. 아들 이야기, 바로 내 이야기다.
보따리를 풀었다 하면 내 이야기가 나오니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가 금세 귀찮고 민망해졌다. 심지어 부모님은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닌, 아주 사소한 일까지 말했다.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상을 받아서….”
“우리 아들이 써준 시인데….”
어느 날 내가 약간의 투정을 섞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제 이야기만 해요? 엄마 아빠도 열심히 살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셨잖아요.”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들, 엄마가 왜 남들에게 엄마 이름이 아니라 승준이 엄마로 불리는지 알아?”
“그야 제 엄마니까요.”
“그럼 아들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아들로 불리면 어떨 것 같아?”
순간 난감했다. 그런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내 이름이 아니라 부모님의 이름으로 불린다니, 묘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지? 엄마는 사람들이 내 이름 대신 아들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좋아. 나 자신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니까.”
엄마의 대답에서 나를 향한 애정이 느껴져 감사했다. 그렇지만 맨날 내 이야기만 하는 게 이것과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이어진 엄마의 말에 의문이 풀렸다.
“엄마에게 자식 이야기는 그런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의 엄마니까 아들 이야기만 하게 되는 거지.”
머리가 멍해졌다. 이야기보따리 안에 당신들은 없는 듯 내 이야기만 했던 것은, 지금껏 엄마 아빠가 자기 자신보다 나의 엄마 아빠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부모님의 이야기보따리에 담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디 이야기보따리뿐일까? 부모님의 마음속에는 나를 향한 사랑, 염려, 관심이 가득하겠지. 나도 내 마음속에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더 많이 채워야겠다.